사물은 본질이 존재의 이유이다. 입을 수 없는 옷이나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가방은 존재의 이유가 없다. 그저 쓰레기가 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예외이다. 존재가 본질보다 앞선다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말했다. 장 폴 사르트르의 '인간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는 말을 굳이 가져오지 않더라도 우리는 사회 시간에 '인간은 그냥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 인간이 사회적으로 어떤 기여를 얼마나 하는지, 그 인간이 얼마나 많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지 등은 인간의 존재 가치를 논할 때에 중요하지 않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인식이며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물론 현실에서도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꺼리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존재이다'라는 사실이 옳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생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생명은 본질에 앞서는가? 인간중심주의적인 가치에서는 생명도 하나의 대상화된 사물이며, 따라서 본질이 존재의 이유라고 할 것이다. 정말 소의 본질이 인간에게 제공되는 가죽과 육질에 있는 것일까? 인간이 어떤 생명체를 도구화했다면 그 본질이 도구적인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가?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존재론적 가치의 범위를 생명으로 확장하면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모든 생명은 존재가 본질보다 앞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그들의 존재론적 가치를 어떻게 실현시켜 주어야 하느냐의 문제에 봉착한다. 존재론적 가치는 스스로 실현할 수 있는 존재만이 갖는 것인가? (이런 논리는 인간으로 확장해도 매우 위험하다.)
아마도 오래 전 원시 사회에서는 모든 생명을 존재론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식했으리라. (그것이 원시적이며 미개한 가치였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동물들을 인간이 무분별하게 개량하고 실험도구로 삼으며, 공장식으로 대량 사육을 하면서 완벽하게(?) 도구화되었고, 존재론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매우 불편해졌다. 어쩌면 동물에게도 존재론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뒤죽박죽 혼란의 연속이 될 지도 모른다. 가치의 변화는 실천의 변화를 수반한다. 인간을 위해서라도 우리의 인식의 틀을 바꾸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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