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계 학생들을 이렇게 많이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담임을 하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종종 예체능계 학생들이 있긴 했으나 늘 소수였고, 자기들이 '알아서' 입시 준비를 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에 다수의 예체능계 학생들을 보니, 우리나라 입시 제도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첫째, 전적으로 사교육에 의존한 기술로 입학한다는 점이다. 이는 계층 재생산의 문제와 더불어 사교육 조장, 공교육 황폐화를 낳는다는 문제를 야기한다.
둘째, 대학에서 1학년 때부터 너무 세부 전공으로 나누어 뽑는다는 점이다. 이는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큰 미대 준비 부담을 준다. 물론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조소와 공예와 도예가 완전히 다른 분야이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초 소양 능력을 보고 선발한 후 2학년 때에 전공을 구분하여 선발해야 한다.
셋째, 미대의 경우 대학마다 실기 전형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학과마다 다른 것은 정말 '관대하게' 인정하겠다. 하지만 대학마다 실기 전형이 다른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매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완전히 대학 중심이다. 미대 교수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준비된'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지, 굳이 자신들이 '기초부터' 가르쳐야 할 학생들을 선발하고 싶지는 않을게다. 안 그래도 오겠다는 학생들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시험을 표준화할 필요가 없다. (아마도 창의성을 보기 위해서 어쩌구 하며 학생들의 자질을 우선시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해 줄 수가 없다.) 또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울대 지역균형이 예체능계에는 없는데 -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예체능계 대학은 기회균형 할당이 거의 없다.- 당연히 만들고 싶어하지 않을 것 같다. 예체능계 대학에서는 입학 후에도 재료비며 레슨비며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교수들이 그런 걱정까지 해야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겠는가? 결코 재료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제자들 생계 걱정까지 해 주며 예술하고 싶어하진 않을 것 같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용납하며 수용하지는 못하겠다. 예체능 입시가 대학 중심에서 바뀌어야 한다. 정말 잠재력만 가지고 선발하든가, 학교 미술 교육만으로도 갈 수 있게 해 주든가...왜 대학은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가?
조소과에 다녔던 친구가 있다. 부모님이 꽤 큰 식당을 하며 유복하게 사는 - 대학생 시절부터 자기 차를 몰고 다녔던 - 친구였는데, 이 친구도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 이번 작품은 딱 브론즈로 하고 싶은데, 너무 비싸서 못하겠어. 그냥 석고로 해야 할 거 같애." 그 말이 요즈음 무슨 뜻인지 '깊이' 이해가 되며 학생들의 얼굴과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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