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언제, 왜 힘들다고 느낄까?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무력감을 느낄 때이다. 아무리 봐도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일 때 힘들다고 느낀다. 교사에게 힘든 때는 언제일까? 흔히들 학생들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학교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학생들을 접해 보았고, 학습 지도나 생활 지도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한 경험이 많았지만 그런 이유로 교사 생활이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해결 방법을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교사가 되기로 작정한 이상 학생들의 문제에 대응할 준비를 기꺼이(?) 하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극복이 가능했다. 교사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경험 등에 따라 어려움을 느끼는 현상이나 정도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학생의 교과 지도나 생활 지도는 ‘나’를 바꾸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했다. (물론 늘 학생 문제는 끊이지 않고, 여전히 미결인 문제들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해결을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늘 있지 않은가?)
그런데 국가의 정책과 학교의 운영 방식이 옳지 않다고 여겨지며 학교 교실 현장까지 황폐화시킬 때에는 심각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평준화와 특목고 및 자사고 문제, 대학 입시 제도, 교육 과정 내용 및 운영 방식과 과목 편제, 거점 학교제와 성취 평가제 등 당장 교실 수업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이지만, 교사는 단순한 정책 수용 및 전달자에 불과해진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교사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거나 저항하는 행동 양태가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후자보다는 전자가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외적 행동으로는 전자를 선택하면서 내적 동기는 충족되지 않는 자괴감, 무력감 등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수능 제도는 국․영․수 과목 외에는 선택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회과나 과학과의 고3 수업을 황폐화시키고 있다. 선택 과목에서 배제된 수업 시간은 자습 시간으로 전락했고, 교사가 수업 시간에 들어가서 자습을 시켜야 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와 같은 제도 속에서 교사는 수업 시간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 교육 과정에 ‘시대착오적이며 부적절한 내용 요소’를 넣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학교 붕괴 현상을 가져온다.
나 역시 수능을 한 달 여 앞둔 요즈음, 학급 구성원 40명 중 대략 5~15명 정도만 데리고 수업을 한다. 교사가 수업을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어폰을 끼고 동영상 강의를 듣거나 혼자서 다른 공부를 한다. 교사가 왕따가 된 기분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선택하지도 않은 과목을 공부하라고 집중시킬 수가 없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집중시킬 수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입시 제도때문에 공교육이 망가지고 있으며, 교사가 이에 일조하는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해결 방법도 안 보인다. 모든 학생이 사회 혹은 과학 수업을 다 들을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학교 수업 시간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받쳐줘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는 입시 제도를 바꾸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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