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훈련사는 훈련시킬 필요가 없었다

사회선생 2020. 11. 12. 08:39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그런데 막상 내 문제, 우리의 문제가 되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동네에서 떠돌이 백구 한 마리를 우여곡절끝에 구조했다. 올가미로 포획해서 뜰채로 바닥에 질질 끌고 가는 백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 포함 동네 주민 몇몇이 격분했고, 구청 담당자에 항의했다. 정부 기관이 동물학대에 해당하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포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청의 반응이 적반하장이었다. 이에 동물보호단체도 움직였고, 정식으로 경찰에 고발까지 하며 싸움이 시작됐다. 때로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백구는 동물구조협회 보호소로 갔고, 거기로 잡혀간 모든 개들이 그렇듯이 곧 살처분될 예정이었다. 몇몇 주민들은 그 백구를 어떻게든 살려 보자고 뜻을 모았고, 십시일반 비용을 모아 일단 백구를 데리고 나와 사설 애견 훈련소에 맡겼다. 적지 않은 위탁비였지만 백구를 잘 훈련시켜줄 거라 믿었고, 이후 입양까지 주민들이 함께 노력해 보자고 했다. 중대형견, 거기에다 흔하디 흔한 백구는 입양되기 힘든 종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지만 그래도 힘 닿는데까지 해 보자, 안 되면 해외입양이라도 보내보자, 그래도 안 되면 그 때 생각해 보자고 했다. 엄밀히 말하면 대책 없다. 그래도 일단 저질렀다.

설이라는 이름을 갖고 애견훈련소에 맡긴지 한 달이 넘어 두 달로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훈련은 커녕 뭐 하나 좋아지는게 없다. 그럼 훈련은 그만 두고 밥이라도 제대로 먹여서 살이라도 통통 올라야 하는데 포획 당시보다 훨씬 말랐다. 자유를 잃었으니 따뜻하게 잠이라도 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 펜스 안에는 몸을 누일 담요 한 장이 없다. 우리가 구조한 것이 정말 구조가 맞는지 회의가 들 정도였다.

이야기를 듣자니 훈련소에는 수 십 마리의 위탁견들이 있는데, 훈련사 한 명이 출퇴근하며 이 아이들을 돌본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 밥이라도 제대로 먹이면 다행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훈련사 입장에서 설이를 굳이 훈련시킬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차라리 이렇게 자리 차지하고 있는 편이 훈련사에게는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열심히 훈련시켜도 될지 안될지 모른다. 그럴 바에는 그냥 편하게 훈련 접고, 밥이나 주면서 가둬 두면 위탁비는 꼬박꼬박 나올거고, 위탁 기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그도 알지 않을까? 게다가 개인 돈으로 주는 위탁비가 아니니 개가 훈련이 됐네 안 됐네 하고 시끄럽게 할 사람도 없다.

 

더 이상 그 곳에 맡길 수는 없다. 그런데 대안이 없다. 늘 문제는 있는데 대안이 없다. 사람이라도 안 무서워해야 해외입양이라도 적극 추진해 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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