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때문에 구청에서 일반고 역량 강화 명분으로 집행되지 못한 예산이 남아도나보다. 갑자기 학급 운영비를 줄테니 학급 행사를 기획해서 내란다. 학급당 30만원씩 책정돼 있단다. 옳다구나, 이 참에 교실에 프린터기나 하나 사 달라고 했다. 늘 수행 평가다 뭐다 제출해야 할 인쇄물이 많은데, 교내에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프린터기가 없어서 늘 동동거리고 있는 모습을 봐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급 행사에 프린터기가 필요하다며 계획서를 올렸지만 안 된단다. 행사용으로 소비되는 것이어야 한단다.
정말 필요한 곳에 예산이 사용되지 않고, 예산을 타오기 위한 집행이 필요하다는 것을 -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 다시 느꼈다. 비단 학교 뿐이겠는가? 4분기에 접어들자 동네 구석구석 포장 공사 구간이 많아진 것도 아마 비슷한 맥락일거다. 소비해야 채워지는 예산의 속성때문에 일단, 무조건 써야 한다.
명분이야 그럴듯하게 포장되지만 결국 1학년 학생들에게는 개인에게 굳이 사주지 않아도 될 USB 사서 돌린다고 하고, 2학년은 반별로 피자 파티나 할 예정인가보다. 나도 할 수 없이 도서 상품권 사 달라고 했다. 그럼 자기 책 사서 돌려보며 추억이라도 될까 싶어서...
현장 학교에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교사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항상 그들이 필요로 할 거라고 생각되는 것 혹은 기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로만 예산이 채워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끊임없이 IT 설비들을 늘려가며 선진화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교육 현장이고, 교육 현장에서는 교육에 필요한 것들이 지원되어야 한다. IT 수업만이 능사가 아니고, 온라인 수업만이 해결책이 아니다.
돈 있으면 푼돈 풀면서 생색내지 말고, 교과 교실이나 만들어주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인쇄실과 인쇄실 직원이나 고용할 수 있게 해 주지.... 당장 실시간 온라인 수업을 하라는데, 선택 과목 교사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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