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동물원의 동물들

사회선생 2013. 9. 16. 21:02

동물 프로그램에 종종 등장하는 것이 동물원의 인공 포육이다. 사막 여우, 호랑이, 사자, 반달곰, 독수리, 유인원과 원숭이 종류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태어나자마자 눈도 뜨기 전에 어미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인간의 손에서 우유와 이유식으로 성장하는 동물들. 인간을 어미로 알고 자랄 새끼들의 비극, 본능을 상실하고 새끼를 돌보지 않는 어미, 결국 동물원 철창 속에서 태어나 동물원 철창 속에서 맞게될 죽음. 그네들의 삶이 눈 앞에 펼쳐져 그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다. (어떤 동물이라도 새끼는 모두 귀엽다. 인간도 아기는 다 귀엽지 않은가? ) 동물원에서의 생존율이 야생에서의 생존율보다 높다고 해도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인간이나 동물이나 자유롭게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유가 주는 외로움, 자유가 주는 위험이 있다고 하더라도, 야생동물에게 자유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후도 맞지 않고, 운동도 하기 힘든 철창 속에 있는 것도 힘든데 낯선 인간들이 계속 떠들고, 던지고, 쳐다보고... 동물원 동물들의 스트레스는 아마 극한일 것이다. 죽지 못해 산다는 것이 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바다를 누비던 동물은 작은 수조 속에서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들판을 뛰어다니던 늑대는 철창 속에서 빙빙 도는 것이 운동의 전부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새끼까지 낳는다. 아니 낳아야 한다. 동물들의 본능까지도 없애버리는 동물원 생활. 어떤 에미 애비라도 그런 상황에서 온전히 부모의 역할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물원의 동물들 치고 털빛 좋은 아이들이 없으며, 생기 있는 눈빛을 가진 아이들이 없다. 그냥... 산다... 목숨만 연명한 채...

 동물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수록 그네들의 지능이 어떤 부문에서는 인간보다 뛰어나고, 그네들의 감정이 매우 섬세하며, 그네들 역시 그네들만의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그들을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런데 우리는 동물을 인간을 위한 '천연자원' 쯤으로 여기고 의식주에 활용해 왔다. 심지어 동물원을 만들어 그들을 가두어 두고 '구경꺼리'로 삼았다. 무지했다.  이제는 우리가 무지했음을 인정하고 그들도 그들의 터전에서 살 수 있도록 존중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터전을 함부로 훼손하지 말고, 그들을 함부로 포획하지 말며, 그들답게 살도록 내버려 두어야 한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모른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들의 감정을 모른다고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그들의 고통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더 이상 증가해서는 안되며 동물원은 동물복지의 장으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인간이 인간답다고 하는 이유는 높은 지능 때문이 아니라 약자에 대해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인간답다는 것을 이제는 종을 넘어서 보여주어야 한다. 인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