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정말이지 에어컨 없었으면 어떻게 지냈을까 싶다. 브라질에서 일을 하다가 온 친구가 말한다. "내가 아마존에 여러 번 가 봤잖아. 확실히 말할 수 있어. 서울이 아마존보다 훨씬 더워. 거긴 그래도 아침 저녁은 선선한 기운이 느껴져."
더위때문에 집중력도 훅 떨어지고 일도 손에 안 잡혀서 TV 리모콘을 잡고 이리 저리 돌려보는데, 프로그램의 주제를 딱 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동(?) 혹은 웃음(?)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결국 '먹자, 사자, 가자.' 중 하나로 귀결된다.
광고 이야기가 아니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이야기이다. 드라마의 PPL은 그나마 덜 노골적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대 놓고 하는 먹방이 왜 이리 많은지, 아무리 먹다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지만 이건 뭐 거의 병적으로 먹는다. 나야 방송 세계의 제작 시스템을 알 리 없지만, 식당과 제작자와의 유착이라고 추론하는게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여행지를 배경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이다. 관광청 등의 협찬을 받아서 '생생하고 광고같지 않은 광고'를 찍어 주는 셈이다. 시청자들이 '감동적이다, 재미있다, 웃기다' 의 감정에서 끝나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 가고 싶다'로 이어지게 만든다. 끝없이 소비를 부추긴다. 아니 어쩌면 '먹고 싶다, 갖고 싶다, 가고 싶다.'는 욕구를 만드는게 프로그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방송의 목적은 시청자의 욕구를 생산하고 그것이 소비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라고 가르쳐야 할 판이다.
채널을 보도 프로그램으로 돌려본다. 가짜 뉴스인지 아닌지 알 도리가 없는, '카더라' 방송으로 악악 소리를 질러대는 종편 프로그램을 보고 있자면, 저 프로그램의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전문가들도 아니다. 웬 듣보잡 변호사들은 그리 많은지. 예를 들어 BMW에 화재가 났다면 도대체 그 원인이 무엇인지 자동차 전문가 분석같은 건 하나도 없다. 우리나라의 외제차 업체들이 어떤 방식으로 차를 생산 및 판매하고 AS가 이루어지는지, 이와 관련은 없는지 심층적인 원인 분석과 해결책도 없다. 가만히 들어보면 '불났어. 큰일이야. 조심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외국 자동차 업체는 한국에서 왕이다. 기업 비밀이라며 안전과 관련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보도 프로그램이라면 이런 근본적인 문제점을 파고 들어가야 하는것 아닌가? 아 속터져.
상황이 이렇다보니 결국 나의 채널은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가게 되는데... 이것도 개인적 취향때문에 기피하게 된다. 먹고 먹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사는게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짠해서 볼 수가 없다. 거의 다 큰 새끼가 수컷 사자에게 잡아 먹히는 걸 보고 있는 어미 사자의 모습을 보는 것도 슬프고, 사자에게 자신의 새끼를 빼앗긴채 망연자실한 임팔라를 보는 것도 힘들고, 잘 나갈 때에는 무리의 우두머리로 지내다가 늙고 힘없어지니 젊은 사자에게 보스 자리를 빼앗긴 후 떠돌다가 굶어 죽는 사자의 모습도 측은하다. 동물의 감정에 이입이 확 돼서 감정이 힘들어 볼 수가 없다. 아, 정말 못 보겠네. 결국 TV를 끈다.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것도 많아야 살 맛 나는거야. 왜 사니? 다 재밌게 살자고 사는거지. TV가 대중들에게 대리 만족 시켜주는 효과도 있는거야. 그리고 자본주의라는게 계속 소비를 해야 경제가 굴러가잖아. 당연히 미디어는 소비를 진작시켜야 지들도 살고 경제도 살리고. 그냥 즐기면 그만이지 쓸데없는 생각만 하면 흰머리만 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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