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세 명이 식당에서 한 명의 학생이 밥을 먹고 있는데 종이 쓰레기를 뿌렸다고 한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학생들 몇이 교사에게 알렸고, 교사는 학교 폭력으로 생활지도부에 사안을 조사해 보아야 한다고 알렸다. 우리 반 학생이 두 명이나 연루된 사건이라 교실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학교 폭력 사건이 발생해서 경위를 조사 중이다. 어떻게 결론이 나올지 모르지만 정말 밥을 먹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세 명이 쓰레기를 뿌린 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절대 피해자 편이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에게 폭력 당할 만한 짓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심정적인 것과 실제로 폭력이 행해지는건 절대로 다른 문제이다. 난 식당까지 찾아가서 밥 먹는 친구에게 쓰레기를 뿌렸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치 내가 당한 것 같은 참당한 기분을 느꼈다."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화근이었다. 가해자로 신고돼 조사 받는 우리반 학생 한 명이 교감선생님에게 '담임이 피해자 편만 든다, 자신만 미워한다.'고 하며 항의했다. 교감선생님은 나를 불러 절대로 편파적인 발언을 하지 말고, 사안 언급 자체를 피하라고, 사건이 확대되며 공연히 담임 교사가 덤탱이 쓸 수 있다고 주의를 주며 신신당부했다. 교사를 보호해 주기 위한 교감선생님의 말이라는 건 알지만 그 말을 듣는 내내 아주 착찹했다. 교감선생님은 그렇게 말하는 학생의 학급을 바꿔 주기까지 했다. 명목상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한 반에 둘 수 없다는 것이었지만, 피해자가 강하게 항의하니 불편하지 않게 해 주기 위해 학급을 바꿔 준 것이다.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는 것이 기정 사실이 됐고, 그 사실이 생기부에 기재된다는 것을 알게 된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하기 시작했고, 피해자는 그런 태도와 더불어 끊임없이 떠도는 소문들에 상처를 입으며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학부모 역시 자식의 말만 듣기 때문에 더욱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사건이 진행되는걸 보면서 다시 느낀다. 학교 폭력 문제는 학교 내에서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을. 학교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조용히 해결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 학교 폭력 사안이 발생하면 가해자와 피해자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부터 더욱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하고, 교사는 교육을 할 수 없게 된다. 모든 말은 왜곡되어서 해석되고 악의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학교 폭력은 학교 밖에 전담 해결 기관이 따로 존재해야 한다. 그래서 그곳에서 그들이 조사하고 그 경중에 따라 징계를 내려야 한다. 학교 안에서 교사들이 사건을 조사하는 것 자체가 이 학생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리고 이 정도 사안이면 학교에서 교육적 차원으로만 해결할 수는 없다. 19살짜리 학생들에게 '화해해 그리고 앞으로 사이 좋게 지내'라고 한다고 그리 되지 않는다. 이미 자아가 완성된 학생들은 결코 싸우면서 친해질 수 없다. 친해지기는 커녕 적대적인 관계를 해소하기도 매우 어렵다. 좀 더 적극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걸 학교에서 강제하기는 어렵다.
어느 학교에서는 학폭위가 열리자 가해자들이 변호사를 데리고 와서 학교폭력위원회의 징계에 불복하며 소송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유는 하나!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는 생기부에 기재할 수 없으니 그걸 막기 위해서이다. 수시 전형때까지만 재판을 연기하면 수시로 대학 가는 데에는 지장을 주지 않으니 변호사 비용 들여서 그렇게 하는거다. 수시 전형 끝난 다음에야, 생기부에 기재되든 말든 어차피 졸업 때에 지워지니 상관없다는 것을 안다. 왜 학교가 이런 일에까지 관여하여 경찰의 역할까지 해야 하며, 그런 학부모들에게까지 휘둘리며 교육이 아닌 재판(?)을 해야 하는가? 정말이지 능력 밖의 일이다.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중립이라는 말을 앞세워 공정을 훼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교무수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과급. 자가 평가해 주세요 (0) | 2018.04.24 |
---|---|
시간외 근무 수당을 날리다 (0) | 2018.04.10 |
학부모, 개인정보유출로 열폭하다 (0) | 2018.03.29 |
볼테르의 말이 생각난다 (0) | 2018.03.27 |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나요? (0) | 2018.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