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아르헨티나의 어린이 사진

사회선생 2017. 12. 20. 14:37

우리집 강아지는 새 물을 좋아한다. 늘 물그릇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어도 물이 마시고 싶으면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그릇과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본다. 새 물을 따라 달라는 뜻이다. 물그릇을 비우고 수돗물을 새로 받아주면 그 물이 맛있는지 정말 잘 먹는다. 이렇게 개도 물 맛을 안다. 듣자하니 다른 동물들도 비슷하단다. 하긴 생명이 있는 것들이 맛을 모르겠는가? 우리가 그 동안 몰라서 방치했을 뿐... 

동물도 그런데 인간이 물조차 먹을 수 없다면, 이처럼 가혹한 일이 세상에 있을까? 만일 누군가 의도적으로 고문하기 위하여 물을 주지 않는다면 다 그 누군가를 욕할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누군가를 특정할 수 없다면? 가난한 사람이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면?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이 우리집 강아지의 물그릇과 오버랩되며 나를 힘들게 한다. 아르헨티나의 한 어린이가 거리에서 엎드려 고인 물을 먹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이는 물이 없는게 아니라 물을 사서 마실 돈이 없는거다. 그냥 옆에 있는 어느 건물이든 두드리고 물 좀 달라고 하면 안 되는건지. 아니 그렇게 하기 전에 적어도 사회에서 그들에게 물과 밥만이라도 먹게 해 주면 안 되는건지. 왜 인간인 그들이 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도로 한 복판 웅덩이에 고인 시꺼먼 물을 마셔야 하는건가? 우리가 집단적으로 그 아이에게 고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문득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주선이 지구 밖을 몇 바뀌씩 돌고, 원자폭탄이 지구를 수 백번 터뜨릴 수 있고, 인터넷이 저 지구촌 어느 골목의 가로등까지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뭐 하는가? 도대체 그런 기술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정작 목마른 인간에게 물 한잔 떠 주지 못하는 사회라면. 가뭄으로 물이 없어서 모두 힘들어하는 상태가 아니지 않은가. 그냥 그 옆의 가게에서 문만 두드려도 한 잔 정도는 얻어 마실 수 조차 없는 사회라는 것 아닌가.

사진 속의 그 아이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르헨티나의 과라니족으로 태어났다는 사실때문에 거리에서 마실 물조차 구걸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집 강아지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는데, 우리 인류의 과학 기술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고 있는 것인가? 돈이 없어도, 기술이 없어도, 배운게 없어도, 원주민이든, 어린이든 노인이든, 국적이 무엇이든 물 먹고 밥 먹는 것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기술이 우리 인류에게 정말 없는 것인가. 기술이 없는 것인지, 우리의 배려심이 없는 것인지, 우리의 구조가 그걸 막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이건 아니다. 마치 우리가 집단적으로 물을 마시지 못하도록 고문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과 밥은 제발 좀 어떻게든, 먹게 해 주자. 그건 우주선 만들고, 무기 개발하고, 신약 발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의 잘못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다.


 http://v.media.daum.net/v/20171220133605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