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케어받던 네 명의 아기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사망했다. 나오는 뉴스를 보니 관리 소흘로 인한 감염인가보다. (아직 정확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하긴 살인이거나 전염병이 아니고서야 같은 방을 쓰는 아기 네 명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죽을 수 있을까. 그 뉴스를 보면서 과연 그 중 한 명만 죽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이 됐다.
의료 사고가 확실해도 한 명의 아기만 사망했다면 뉴스꺼리가 되지도 않았을 게다. 그리고 병원은 자신들의 책임인 것을 알아도 절대 비밀로 부치고 보호자에게는 아이의 특수한 상황이었다며 비전문가인 보호자를 호도하여 사망 처리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은 의료 과실을 병원에서 먼저 인정하는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병원에 가면 철저히 개인인, 을이 된다. 병원에서 무슨 말을 해도 - 심지어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조차 못해도 - 그냥 믿고 따를 수밖에 없다. 의료 사고가 나도 비전문가이며 철저하게 개인인 을은 의료 사고인지 아닌지조차 알 도리가 없다.
만에 하나 병원의 처치가 의심스러워도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뱃속에 가위라도 들어 있어서 엑스레이에 떡하니 나타나면 모를까 병원의 과실을 우리같이 평범한 시민들이 어떻게 입증한단 말인가? 의료 과실의 경우,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병원이 과실 없음을 밝혀도 시원찮을 판에. 비전문가인 환자 혹은 그 보호자들이 의료 과실을 밝혀야 한다. 병원은 말한다. 의료 과실 여부를 병원이 밝혀야 한다면 모든 환자는 밑져야 본전이니 조금만 의료 서비스가 마음에 안 들어도 소송을 하게 될거고, 의사들은 자신의 과실없음을 입증하기 위하여 정작 중요한 일을 못하고 거기에 매달리게 될거고, 그런 이유로 의사가 소신을 가지고 환자를 적극적으로 치료하지 않게 될 거라고... 정말 그럴까?
아기가 한 명만 죽었다면 지금쯤 그 부모는 조용히 장례를 치르며 눈물을 훔치고 있겠지... 네 명의 아기가 사망했고, 부모가 집단으로 나서서 경찰에 신고까지 하고 나니 병원에서도, 언론에서도 반응을 보이나보다. 떼로 죽지 않으면 의료 사고도 질병사가 되는 사회, 정말 우울하다. 전문가가가 비전문가를 속여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사기다. 우리는 사기를 치려고 공부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라고 공부시키지 않았다. 내가 너무 가는건가. 어쨌든 문득 그런 상상이 되면서 의료 사고가 나도 사고인줄조차 모르고 당하는 선량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있을거란 생각이 꼬리를 잇는다. 이것이 나만의 노파심과 쓸데없는 상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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