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채널이 생기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볼 수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채널이 많아져도 결국 공중파의 재탕, 삼탕에 불과하거나 완성도 떨어지는 저급한 프로그램들만 양산될 뿐이다. 특히 제작비 안 들이고 기본 시청률은 담보할 수 있는 종편의 정치 시사 프로그램들 중에는 거의 찌라시 수준의 완성도 떨어지는 프로그램이 많다. 다른 영세한 채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KBS MBC SBS 프로그램을 재방송 해 주는 채널만 늘었을 뿐이다.
멀티플렉스가 생기면 다양한 영화를 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고전영화, 독립영화, 아시아와 유럽의 영화들도 많이 볼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돈 되는 영화만 상영관을 여러 개 독점하게 됐다. 돈 안 되는 영화는 여전히, 아니 심지어 더 보기 힘들어졌다. 최근들어 천만 관객을 넘기는 영화들이 많아진 이유는 사실 영화의 완성도보다 영화의 대중성과 극장 장악력에 있다.
군함도는 실패하고 택시운전사는 성공했다. 둘 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관 몇 개씩을 차지하며 쉬는 시간 없이 상영된 영화이다. 극장 장악력은 조금 과장해서 거의 독점 수준이었다. 하지만 군함도는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했고, 택시운전사는 천만 관객을 넘겼다고 한다. 군함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민감한 정치적 소재를 다루었고, 송강호의 흡입력 있는 연기가 매력적이었고 그런 것들이 완벽한 대중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김사복의 캐릭터나 행적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았는데, 군함도에서는 광복군이 있었냐 없었냐까지 논쟁이 된 걸 보면 영화배우 김의성의 말대로 군함도는 조금 억울하다고 할 만 하긴 하다. 문득 드는 생각. 만일 누군가가 택시운전사의 상영관 독점을 이야기하면 비난받지 않았을까? 너 전두환 편이냐며... 논점 일탈의 오류이다. 하지만 군함도를 가지고 얘기하긴 쉬웠을게다. 그렇다고 너 친일파냐고 하진 않을테니...
군함도이든 택시운전사이든 어벤저스든 아바타든 영화관을 독점 수준으로 장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영화산업을 산업으로만 보지 말고, 문화로 보고 접근하여 다양성이 시장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시장 경제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영화관 주인과 영화 제작자들이야 어떻게든 최대 이익을 보려고 하겠지만, 멀티플렉스를 허가해 준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멀티플렉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면 1관부터 11관 중 여섯 개의 상영관에서 하나의 영화를 돌리는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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