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작업을 할 때에 항상 원고를 펑크 내는 사람들이 있다. 작업 초기, 아니면 적어도 중기 쯤에 ‘저는 너무 바빠서 더 이상 못하겠어요’ 하고 일찌감치 손을 털어주면 고마운데, ‘할게요, 낼게요, 내일요, 모레요’ 하다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손 털고 원고 조판하는 과정에서 잠수를 타거나 여전히 ‘바빠서요, 나중에요’ 하는 사람들이 꼭 팀원들 중 한 두 명은 있다. 아무리 그의 능력이 탁월해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그런 사람들은 도덕적 해이에 빠진 무임승차자이다. 어차피 인세 나눠 갖는 몫은 정해져 있고, 자신들이 펑크 낸다고 책 포기할 거 아니고 누군가가 뒤처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는 짓이다.
바쁘면 안 하면 된다. 안 바쁜 사람이 어디 있나? 그런데 더 신기한 건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도 그들만의 학벌이나 인정 혹은 거래로 형성된 네트워크 때문에 ‘그래도 형님인데 어떻게...’ ‘그래도 본인이 계속 하겠다는데 어떻게...’ ‘그래도 잘 하는 부분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서 계속 간다는 것이다. 성실하게, 참신한 아이디어로 열심히 하고 싶어 하는 별로 학벌 안 좋은, 별로 끌어줄 선배 없는, 특정 패밀리(?) 멤버가 아닌, 별로 내세울 거 없는 교사들 많다. 그들을 발굴하길!
언젠가도 이런 일로 당황스러워하던 때에 한 선배가 말했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저렇게 하겠어? 교육부나 평가원에서 불러 봐. 냉큼 가서 기한 내에 딱 제출하지. 출판사는 자기 출세에 별로 도움이 되는 기관이 아니라 저러는 거야. 난 다시는 쟤랑 일 안 하니까 쟤랑 팀 짤 때에는 나 부르지 마.” 참고로 그 선배는 정말 성실했고, 매우 탁월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겸손했다. 아, 그 선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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