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부 전형 확대의 명목상 목적은 학교 교육 정상화이겠지만 정말 그런지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학생부 전형 확대가 학교 교육 정상화에 기여하고 있는지를 연구해 봐야 한다. 그리고 학생부 종합 전형의 확대가 대학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파악해야 한다.
아무리 봐도 대학은 자신이 원하는 학생들을 뽑을 수 있는 안전 장치를 확보하는 것이며, 고등학교, 특히 일반 인문고는 학교 교육이 오히려 비교육적, 혹은 파행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 같기 때문이다. 대학이 원하는 학생들을 뽑고 싶어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원하는 학생들을 뽑고 싶은 것은 - 성적 순으로 뽑는 것보다 -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모두 수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기부 작업을 위해 매우 다양한 행사를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상장을 남발해야 한다. 그것까지는 좋다.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이나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 수준 미달이어도 상을 줘서 격려하는 것까지는 교육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학생의 활동에 대한 내면적 변화까지 내가 읽고 써 줄 수는 없다. 불가능하다. 내가 무슨 독심술가도 아니고...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행동의 변화 정도이다. 결국 생기부의 진실성은 늘 함정으로 남는다. 그런데 그것이 입시를 좌우한다니 학생이나 학부모는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거 써 주세요, 저거 써 주세요, 이거 지워주세요, 저거 지워주세요....
바라건대 생기부를 이원화해서 운영하면 안 될까? 학교에서 교사는 학교에서 했던 사실들, 관찰한 현상들만 기록해 주고, 학생 내면에서 일어난 변화는 스스로 알아서 적도록 하는 것이다. 즉, 생기부를 교사용과 학생용으로 나누어서 적고 그에 대한 평가를 대학에서 알아서 활용해서 선발하도록. 교사 평가에만 의존하지 말고, 학생 스스로 자기 평가를 하게 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40명이나 되는 학생들의 내면 세계까지 파악해서 써 줘야 한다는 것은 학교 현장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이 하는 말이다.
학생이 그 책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는데, 저 읽었구요, 이렇게 써 주세요 하면 정말 읽은 것처럼 써 줘야 하는 생기부. 이게 생기부인가? 사회에 나가기 전부터 보이기 위한 것에만 치중하고, 요령만 터득하게 하는 것 같아서 나는 생기부를 볼 때마다 찝찝하다. 그런데 학생부 전형이 확대되니 더 많이, 더 자세히 써 주어야 한단다.
동아리 활동 4~5개가 기본이라고 어느 생기부 전문가가 와서 설파한다. 학교에서 3시 30분까지 수업하고, 5시 40분까지 보충수업받고, 6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는데, 동아리 활동을 4~5개 하라고? 이건 사기를 치자는 말의 다른 말이 아니고 무엇인가? 동아리의 취지는 학교 수업을 줄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학교는 이를 수용할 생각은 절대 없다. 그런데 동아리는 해야 한다. 무늬만 동아리. 이런 비교육적인 행태로 학생들을 대학에 보내야 한다니... 교사로서 너무 챙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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