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권력, 그리고 성추행

사회선생 2014. 9. 15. 18:17

 얼마 전 이병헌이 20대 초반의 여성 연예인 - 인기를 얻고 싶어하는 무명의 연예인 - 을 고발했단다. 그 여성 연예인이 이병헌과 같이 놀면서(?) 찍은 동영상으로 거금을 요구하며 협박했다나? 그런데 뉴스의 보도 행태가 참 편파적이다. 그들 사이에 숨어 있을 수 있는 권력의 위계와 상류층 - 이병헌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거물급 영화배우이다. - 의 부도덕은 별로 제기하지 않고, 무명의 여성 연예인이 50억을 요구하며 협박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춰 보도하기 때문이다. 이병헌이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여성 연예인 이상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녀가 진짜 돈이 목적이었다면 50억을 요구했을 가능성은 낮다. 현실 가능한 5억 정도에서 합의봤겠지. 이병헌을 골탕먹이고 싶을 만큼 억울한 일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병헌을 사랑하거나 그를 통해서 뭔가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자 같이 죽자고 덤볐을 것 같다. 뭐... 나도 그 속내를 알 도리는 없다. 믿거나 말거나 그냥 나의 촉이다.)  

 그런데 오늘은 박희태 - 국회의장을 했던 현직 국회의원 - 가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단다. 캐디의 가슴을 만졌는데, 귀여워서 그랬다나? 아, 정말 되묻고 싶다. 당신 딸이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는데, 그 곳에 온 노인이 귀엽다며 가슴을 만졌다고 해도 당신 딸에게 지금처럼 이야기할 수 있냐고? "네가 귀여워서 그런거야. 그게 왜 기분 나쁘니? 칭찬인데...이제 손님들이 어딜 만져도 기분 나빠하지 말고 즐기렴."

 내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여고생들이 19살이다. 그녀들은 곧 무명의 연예인 지망생이 될 수도 있고, 캐디가 될 수도 있고, 회사의 신입 사원이 될 수도 있고, 가게의 점원이 될 수도 있다. 그 곳에서 성추행을 당해도 불쾌하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권력 아래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성추행은 권력의 위계에서 나타난다. 그런 이유로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그 자리에서 적극적인 불쾌감을 표시하기 힘든 상황이 대부분이다.) 

 오늘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네 인격이고 네 몸이니 그렇게 성추행을 당한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그 자리에서 대항하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그러다가 짤리면 어떡해요. 그냥 웬만한 건 참는게 나을 수도 있을거 같애요." 슬프다. 참겠다는 학생의 답변이, 그리고 저런 남성들이 우리 사회의 상류층이라는 사실이......과연 그들은 죄의식을 느끼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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