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가르치는 맛

사회선생 2022. 6. 24. 09:34

"에어컨 꺼. 더우면 일단 두르고 있는 담요 치우고, 긴팔 겉옷 벗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우면 그 때 에어컨 켜." 

 

요즘 교실 들어가자 마자 하는 말이다. 아직 30도가 넘는 기온이 아닌데, 교실에 들어가보면 긴팔 겉옷을 입고, 창문은 다 열어 놓은 채 에어컨을 켜 놓고 있다. 코로나때문에 창문이야 그렇다쳐도 긴팔 옷과 담요로 중무장을 하고 에어컨을 켜 놓는 심리는 뭘까? 진짜 궁금해서 물어봤다. 벗기 귀찮단다. 더 쾌적한 느낌이 들어서 좋단다. '사회적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개인의 편리'만 취하는 것 요즘의 세태가 교실이라고 다를까.  

 

아무리 수업 시간에 '외부불경제'에 대해서 배워도 학생들의 생각과 태도와 행동까진 바꿀 수 없나보다. 우리네 교육이 갖는 한계이다. 지식은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바꿔 놓아야 하는데, 우리가 가르치는 지식이 시험 볼 때에만 유용하게 활용돠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잘못 가르치고 있는 내 탓이지 누굴 탓하랴. 

 

지나친 전기 소비와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열기, 외부와 심한 온도차 등이 환경에도 학생들의 건강에도 그다지 좋을 거 같진 않다. 지구 온난화는 물론이고, 작금의 코로나 사태도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는 꼰대가 되어 목소리 깔고 훈계를 시작했다. 

 

 "너희가 세상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어. 나의 행동이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행동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학생들은 또 뭔 잔소리를 하려고 저리 거창하게 시작하나 쳐다본다. 대학 입시용 생기부에는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지구온난화 현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생각이 넓고 깊으며' , '자신보다 이웃과 사회를 생각하며'... 정말 그렇게 만들어줘야겠다. '지구온난화'에 대해서는 많은 과목에서 이론적으로 많이 배웠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전기값이 아까운게 아니고, 너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너희들이 살 세상이 걱정돼. 우리의 미래는 이제 돈이 아니라 환경이 결정하게 될거고, 우리들이 불편함을 조금씩 감수하지 않으면 환경 문제는 더 심각해져서  우리를 더 힘들게 할 거야. 지금은 마스크지만 앞으론 방독면이 될지도 몰라. 돈 많이 벌어 명품 드레스 입고, 명품 구두 신으면 뭐 하니? 그 위에 방독면 쓰고 다니면 말짱 꽝일텐데...현재 이곳에서의  나의 편의보다 미래의 북극곰까지 생각하며 행동하는 너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 하나쯤이라고 너희들의 가치를 무시하지 마. 나부터 바뀌면 세상이 바뀔 수 있어. 환경은 이제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원이 될 거고, 너희의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거야."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면 학생 중 누군가가 나서서 에어컨을 끈다. 그리고 적어도 내 수업 시간에는 한 여름이 아니면 에어컨을 켜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게 환경을 생각하는 것이든, 교사의 말을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든 어쨌든 나는 그걸 '교육의 효과'라고 생각하고, 그럴 때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맛'이 난다. 

 

"선생님, 전 시간이 체육이어서 에어컨 켠 거에요. 이해해 주세요. 시원해지면 끌게요."

 

아무리 학생들이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학생은 학생이고, 대다수의 학생들은 배움을 통해 긍정적으로 변화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가 학생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들을 진지하게 가르치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교사의 훈계에 '겉옷'을 벗고, '선풍기'를 돌리며 더위를 이겨보려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르치는 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