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하며

사회선생 2022. 5. 30. 13:41

교사들이 돌아가면서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한다.  저녁 6시 20분부터 10시까지 감독을 하다가 재작년부터 9시까지 교사가 감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4시부터 시간 외 근무인데 - 실질적 출근은 7시 30분까지이고, 형식적 출근은 8시이다. - 10시까지 근무하면 실제로 6시간의 시간 외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런데 법적으로 최대 인정해 줄 수 있는 시간 외 근무 시간은 4시간이다.  4시간 인정해 주면서 6시간 근무시키는건 부당하다고 수 년 간 요구해서 최근에야 9시까지로 바뀌었다. 그걸 바꾸는 데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교도 돈 쓰기 싫어서 원칙대로 적용해 주려고 하지 않는데, 사기업에서 하위직 근로자들이 시간 외 근무 수당을 제대로 챙겨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참 슬픈 일이다. 

 

어쨌든 코로나로 야간 자율 학습도 하지 못하다가 다시 자율학습이 시작되어 감독을 하게 됐는데 교사인 나도 적응이 안 된다. 시간 외 근무수당까지 받으면서 뭔가 일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거 같은데, 교사로서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답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자습실 세 곳을 모두 합하면 총 200여명 이상의 학생을 수용할 수 있다. 그런데 거기에 앉아있는 학생들은 모두 합쳐봐야 30명 정도밖에 안 된다. 그 중 10명 정도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웹툰을 보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고, 10명 정도는 엎드려서 숙면을 취한다. 정말 제대로 공부하는 학생은 10명도 안 된다. 굳이 학교 자습실에 남아서 이러고 있는 이유는 뭘까 생각해 봤는데, 집에 가면 엄마 잔소리로 불편하고, 학교에 남아 있으면 나도 뭔가 공부하는 것 같은 착각, 정신 승리를 위한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교사가 공부하라며 스마트폰을 빼앗을 수도 없다. 인권 침해에 해당하는 일이라고 인권위에서 결정해 주지 않았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학생들에게 말 한 마디 하는 것 뿐이다. "공부해야 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말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힌다는 것을 안다. 어떤 학생은 눈치를 보며 스마트폰 화면을 학습하는 사이트로 이동하는 척 하다가 다시 보고, 어떤 학생은 짜증난다는 듯이 힐끗 쳐다보며 그냥 자기 보던 것 그대로 본다. 전자의 경우에는 내가 수업에 들어가서 나를 '선생님'으로 아는 학생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내가 교사인줄은 알지만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니니 선생님은 아닌게다.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 만나도 자신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면 선생님이 아니다.  

 

자는 학생들을 깨워도 반응은 비슷하다. 솔직히 깨우기도 조심스럽다. 오래 전에 등을 때리면서 깨웠다고 민원에 시달렸던 동료 교사도 있었고, 피곤해서 좀 잔 후에 공부하려고 하는데 왜 방해하냐고 따지는 학생도 있었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학교 분위기에서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수업 시간도 아니고, 자습인데 그것도 내 맘대로 못 하냐고. 틀린 말은 아닌데 교사로서 학생이 자는 모습을 보기만 하기 힘든 이 모순을 어찌해야 할까? 하긴 자율학습이라는 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자습실에서 나타나는건 당연한건가? 그럼 자습실에서 교사는 왜 필요하지? 사고 방지를 위해? 교실 관리를 위해? 자습 감독을 하면서 내가 여기에 왜 있어야 하는지, 뭘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습실에서 내가 학생들의 학습을 위해 한 일은 없다. 떠드는 학생들이라도 있으면 조용히 하라고라도 할텐데 워낙 수가 적으니 떠드는 학생도 없다. 그냥 조용히 각자 알아서 스마트폰 보고, 자고, 공부한다.  

 

꼰대가 된건지 모르겠지만 교사의 권위가 있던 시절이 나았을지 모른다. 이것이 옳은 것인지데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학생들의 핸드폰은 빼앗았다가 퇴실 할 때에 줬고, 자는 아이들은 깨워서 '너무 졸리면 집에 가서 편히 자라, 아니면 세수라도 하고 와서 공부해라, 물 한 잔 마시고 와라, 운동장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와라.' 진짜로 그렇게 시키며 공부시켜도 학생이나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리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 

 

시대가 바뀌었고 학생들도 바뀌었고, 학부모도 바뀌었다. 그런데 나만 안 바뀌었나보다. 자습실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학생이나 수 시간 동안 깊은 숙면을 취하다가 가는 학생들이 거슬린다. 학교마다 자습실을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자습 감독을 잘 했다고 할까? 자습실 감독을 하며 역할 긴장을 경험하고 있다. 어디에 맞춰야 할지 잘 모르겠다. 교사가 꼰대인가보다. 가만히 있자니 이래도 되나 싶고, 개입하자니 역시 그래도 되나 싶다. 적응이 안 된다. 자습실 감독이 그래서 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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