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J. S .밀이 일찍이 말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 이 말이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될까? 동물은 자아가 없을까? 나름대로의 신념과 가치같은 것이 정말 없을까?
동네 뒷산에 사는 떠돌이 백구는 동가식서가숙하며 지냈던 개다. 한 살 남짓 되었을까, 아마 산에서 태어난 것 같았다. 사람을 지나치게 무서워하지도 않았지만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산자락 아래에 위치한 어느 건물의 주차장에서 늘어지게 자는 일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거기에서 먹이를 챙겨주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떠돌이 개의 운명이 그렇듯이 누군가의 신고로 포획되었다. 불법으로 설치한 올무에 걸려 몸부림쳐야 했으며, 뜰채로 포획된 채 바닥에 질질 끌려서 살처분을 하는 보호소 아닌 보호소로 잡혀갔다.
이를 목격한 동네 사람들은 백구가 그렇게 잡혀가서 살처분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살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살려주는 방법은 누군가 입양을 하는 일밖에는 없었다. 중형견이라 입양이 힘든데다가 심지어 아직 야생성이 살아 있는 개를 입양할 사람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백구를 동물구조협회에서 되찾아와서 올무로 다친 다리를 치료해주고, 비용을 대며 훈련소에 맡겼다. 입양갈 때까지 먹이고 재우고 길들여 보자고...
두 달이 지났지만 무성의한 훈련사와 야생성이 살아 있는 백구는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사람을 더 싫어하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사람 손만 닿으면 떨면서 으르렁거렸다. 그래도 두 달 동안 매일 훈련사가 밥을 주며 인숙해진 덕분인지 손에 있는 간식을 먹는걸 보면 사람에게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훈련사의 엉덩이를 물기도 했다지만 꼬집는 것 같았지 무는 것 같지는 않았다는 훈련사의 말을 들어보면, 백구는 무서워서 나가는 표현이었을 뿐 - 작정했으면 미친듯이 물어버리지 않았을까? -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고 보긴 어려웠다. 하지만 사람을 가까이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백구를 살려보고 싶었던 동네 사람들은 개와 24시간 함께 하며 애정을 가지고 돌봐 줄 임시 보호자를 힘들게 찾아 개를 맡기기로 했다. 훈련소에서 나와 케이지에 실려서 임시 보호자의 집에 온 백구는 오자마자 사방이 막힌 테라스의 벽을 초인적인 힘으로 점프하여 탈출하고 말았다.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이라고 생각했던 울타리였는데, 백구에게는 사생결단 넘어야 할 감옥의 울타리처럼 보였나보다.
길들이려고 했고, 길들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인간의 오만함은 아니었을까? 두 그 동안 밥 굶지 않고, 따뜻한 곳에서 지낼 수 있었을텐데, 아직 사람의 애정을 느껴보지 못한 백구에게 사람이 주는 밥이나 잠자리 따위는 자유에 비할 바가 아니었나보다. 이전의 굶주렸던 자유로운 삶이 두 달 동안의 밥보다 훨씬 더 나았던게다. 사람에게 잡혀 애완견따위로 사느니 멧돼지와 싸우다 죽어도 그냥 산에서 자유롭게 살겠다고 '생각'을 한건 아닐까? 그에게 자유를 찾아 나간건 본능일까? '배부른 애완견보다 배고픈 자유견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의 생각의 방식이나 언어는 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건 그는 자유를 그리워했고, 자유를 찾아 떠났다는거다. 모든 생명의 궁극의 목적은 자유가 아닐까. 비단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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