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과 생명

삼색이를 어쩐다....

사회선생 2020. 7. 27. 11:14

별 일 없는 날이면 퇴근 후 토리, 해리 데리고 산책을 한다. 그러다가 길고양이들을 보게 됐고, 쓰레기 근처에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길고양이 밥을 거의 매일 챙긴게 5~6년쯤 됐나보다. 집 가까이 있는 산책 길, 정자 아래 으슥한 곳에 물과 밥을 놓아주면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나타나는 시간을 아는지, 한 두 녀석이 멀찍이서 기다린다. 그들의 표정은 딱 이랬다. '밥 두고 빨리 가라'  

오다가 안 오면 걱정되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녀석들이 와서 먹고 가고... 그렇게 밥 주인이 바뀌는 것에 슬퍼하다, 안도하다 그렇게 그들과의 관계 설정에 익숙해졌다. 나는 그냥 내 이웃 중에 밥굶으며 사는 생명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중성화도 해 줘야 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나는 그들을 잡아서 수술시키고, 보살필 만한 여력은 없었다. 중성화를 하기 위해 아이를 잡는 것도 내게는 힘든 일이었고, 상처가 아물때까지 카라 씌워서 약 먹이며 집에서 보살피는 것도 나는 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한 두 달 전부터 보이는 삼색이는 여느 길냥이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게 훅 다가와서 알은척, 친한척 하며 부비적거린다. 얘는 사람에 대한 경계가 없다. 사료와 물을 가지고 가면 - 심지어 내 옆에 개가 두 마리나 있는데도 - 두려워하지 않고 내게 와서 부비적거리며 무슨 말이라도 거는 것처럼 에웅거린다. '왜 지금 왔어?'

사냥개의 피가 흐르는 해리는 쌕쌕거리며 공격자세를 취하고 있는데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미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는 유명 고양이였다. 이름도 있었다. 팝콘이란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으면 같이 놀자고 쫓아다니고, 애들이 쓰다듬으면 아무 데에서나 벌러덩 누워 엥엥거리고, 그러다 운 좋으면 츄르도 얻어 먹으며...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아이들 말로는 같이 다니는 검은 고양이가 하나 있는데, 걔는 사람 근처에 절대 안 온단다. 근처 어딘가에 있을거란다.

지난 겨울, 얘와 꼭 닮은 삼색이가 거의 매일 나타나 밥을 먹다가 봄에 사라졌는데, 내 느낌으로는 그 삼색이의 새끼로 보였다. 너무 똑같이 생긴데다가 얘는 성묘가 아니라 청소년묘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게 이렇게 알은척 하며 말을 걸어오니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입양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친화적이라 길거리 생활이 위험할 것 같은데다가 - 고양이 혐오증을 가진 사이코 패스들이 얼마나 많은가? - 사람이나 다른고양이와도 충분히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양에는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어리고, 예쁜 품종묘여야 했나보다. 이웃 분들 중 누군가 입양해 준다면 밥 준 인연으로 중성화 수술비와 기본적인 검진료는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부담하겠다고 아파트 게시판과 동네 고양이 카페에 글을 올렸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동물권 단체 카라의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입양 가능성이 낮다며 중성화해서 주민들이 밥 주며 그 자리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보살피는게 더 현실적일거 같다고 답을 해 왔다.

12년 전인가보다.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면서 난 또 잊어버렸다. 아주 오래 전에 만났던 까만 얼룩이 고양이 나비도 그랬다. 눈이 감긴 새끼 고양이가 시장통 쓰레기 근처에서 에웅거리는 바람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데리고 와서 미미가 다니던 병원에서 치료해 줬다. 너무 귀여워서 금방 입양을 보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지 못했을 때의 막막함이란... 어머니는 온 몸이 벌개져서 쿨럭거리며 약을 먹어도 힘들어했다. 울먹이며 나비를 케어의 보호소로 보냈다. (그 때의 인연으로 그때부터 10년이 넘도록 후원을 했건만 작년 대표의 살처분 문제로 충격받아 후원을 끊어버렸다. 후유증이 나도 크다.) 나비는 운이 좋게도 좋은 분에게 입양가서 앤셜리라는 럭셔리한 이름도 갖게 됐고, 행복하게 살게 됐지만, 그런 행운은 말 그대로 행운이다. 팝콘이에게 그런 행운이 나타날 가능성은 적어보인다. 입양이나 임보를 가려면 아깽이여야 하고, 보호소 입소라도 하려면 불쌍하다 못해 참혹한 수준 정도여야 하는데 그러기에 팝콘이는 너무 괜찮은(?) 고양이가 아닌가?    

그런데 여전히 길거리 생활은 힘들다. 며칠 안 보이던 애가 오래 간만에 밥을 먹으러 왔는데, 오른쪽 앞다리 안 쪽에 긁힌 상처가 있고, 오른쪽 뒷다리를 살짝 절룩이는게 아닌가? 어디서 불량배라도 만나 얻어 맞은건 아닌지 걱정된다. 게다가 아이들 말로는 젖이 나온단다. 그러고 보니 배가 불룩하긴하다. 아직 청소년냥이라 임신은 안 했을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임신까지 했나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면 모를까, 이건 우리집 개들보다 더 친근하게 구는 아이인데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냥 알아서 출산하고 아이들 젖을 뗄 때 쯤에는 중성화 수술해 주고 여기에서 살라고 할까? 그 때까지 얘가 온전히 여기에 머물러 줄까? 그래도 새끼들은 입양을 갈 수 있지 않을까? 임시 보호라도 해 줄 사람을 찾아서 지원을 해 줄테니 출산때까지만이라도 임시 보호를 해 달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살다가 입양 안 되면 다시 길거리 생활 할 수 있나? 정말 머리가 지끈지끈. 왜 얘는 친한척 해 가지고 나를 이렇게 괴롭게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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