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수업이 제일 쉬웠어요

사회선생 2013. 10. 19. 20:40

 초임 교사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생기면 늘 하는 말, "조직 생활이 많이 힘들지? 난 아직도 힘들어. 그래도 수업하는 게 적성에 맞는다면 버텨 봐요. 수업이 주는 즐거움이 있어요."

누구나 교사라는 직업은 교재 연구하고 가르치는 업무가 중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사가 되면 학생들과 지지고 볶는 일은 많이 생겨도, 교사들 간에는 별로 간섭할 일 없이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일-수업과 교재연구-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들어와 보니 학교도 조직이었다. 심지어 매우 관료적인 조직이었다. 지금도 여전하다.

 학교에서의 행정 업무는 교육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런 것 같지 않다. 행정 업무가 생각보다 많고, 심지어 수업보다 더 중요하다. 학교에서 ‘교재 연구해라, 문항 개발 연습해라, 잘 가르쳐야 한다’는 식의 연수나 압력은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수업 때문에 공문처리 못했다고 하면 문책 받지만, 공문처리 하느라 수업 못 했다고 문책 받는 경우는 없다. 예나 지금이나 행정 업무에 대한 압박은 거의 매일 받는다. 심지어 그런 업무는 끊임없이 진화하며 관련 일들이 연쇄적으로 증가한다. 정부와 교육청에서 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일선 학교는 편해지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진다.

 또한 상당히 권위적이다. 교직 생활 초기, 어느 부장 교사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가 조용히 불려갔다. 같은 선생님이 아니니 부장님이라고 부르라고.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최근에 어느 기간제 교사가 부장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가 혼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전히 권위적이구나 씁쓸했다. ‘나는 너보다 높은 지위라는 것을 명심해’ 뭐 이런 것 아닐까? 사소한 것 하나도 결재 받고 해야 하는 권위적 조직, 학교에서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복종해야 하는 조직이다. 대부분의 회의는 갑론을박의 토론이 아니라 학교 측의 방침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명하는 것이다. 이런 조직의 특성상, 위계 서열을 정하는 것이 매우 민감한 문제가 되며, 서열이 아래로 밀릴수록 일이 많고 힘들어진다. 어느 교과 교사들 간에는 위계서열을 정하기 위해 부임순이냐, 경력순이냐, 나이순이냐를 두고 투표까지 행해졌다. 타인들이 보기에는 코메디같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인 것이다.

 교사 초창기 시절, 조직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좌충우돌하던 때 어느 냉소적인 선배가 말했다. “조직은 유능한 사람보다는 순종적인 사람을 좋아해. 소신대로 말하지 말고 윗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 줘. 노우라는 말은 절대 안 돼. 그리고 일을 맡으면 새벽에 나와서 한 밤중까지 남아. 열심히 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돼. 그게 조직이야. 물론 나는 그러지 못해서 이렇게 미움 받지만...” 그런데 거의 20년 전에 들었던 이 시대착오적인 말이 지금도 유효한 것 같다. 아, 정말 예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수업이 제일 쉬웠어요’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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