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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기생충, 아카데미를 접수하다

사회선생 2020. 2. 10. 22:49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4관왕을 이뤘다. 월드컵 4강 만큼이나 기쁜 일이다. 사실 예술이라는 것은 스포츠와 달리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일정 수준 위로 올라가면 순위를 매기기 힘들다.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 타란티노와 봉준호의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웃기는 일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업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대중들의 환호를 받는가, 얼마나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는가 등을 통해 순위를 매기는 영화제들이 많다. 그 중에서 아카데미는 미국, 영어, 백인이라는 배타성을 띈 영화제였다. 아마 봉준호도 그래서 로컬 영화제라고 한 게 아니었을까. 만일 아카데미가 봉준호에게 인색하게 굴었다면 '쳇! 보수적인 아카데미의 한계는 어쩔 수 없군.'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상을 준 걸 보니 아카데미도 이제 좀 달라지고 있나보다.

나는  대중성, 예술성, 사회성이 삼박자를 이룬 영화를 좋아한다. 그 면에서 봉준호는 언제나 최고였다.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서도,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도, 옥자를 보면서도 나는 그의 영화가 이 세가지 면을 모두 적절히 건드리고 있는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창의적인 유머 코드와 상징성 강한 화면 배치 구도와 소품들, 결코 전형적이지 않고 촌스럽지 않은 인물 캐릭터. (한국 영화계의 두 거두를 나는 봉준호와 박찬욱으로 보는데, 그에 비하면 박찬욱은 예술성 쪽으로 좀 더 빠져있어서 내 취향은 아니다. 인간의 본성 중에서도 금기를 너무 예술적으로 건드리는데 나는 사회적으로 건드리는 봉준호 쪽이 더 매력적이다.) 그의 영화는 재미도 있는데, 창의적이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게 참 말이 쉽지, 하나라도 제대로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그런데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미국 사람들도 봉준호의 그런 면을 보았나보다. 결국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의 벽을 뚫고 외국어로 만든 영화 사상 처음으로 각본상, 감독상, 작품상까지 받을 걸 보면... 예술의 길은 결국 하나로 통하나보다. 언어 장벽을 뛰어 넘는 영화로 우뚝 서다니...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마틴스콜세지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한 세대가, 마틴스콜세지와 같이 감독상 부문 후보에 오른 기분은 어떨까? 마틴스콜세지에게 존경을 표하는 그의 수상 소감마저 뭉클했다. 마틴스콜세지는 비록 상은 못 받았지만 상 받은 것 이상으로 기쁘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형님이라고 했는데... 그 '형님'을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을 할까? 이런 언어의 한계를 넘어 쾌거를 이룬 봉준호 감독이다. 봉준호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