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1991년도에 개봉한 옛날 영화이다. 30년쯤 지난 2019년 11월 어느 일요일에 나는 TV를 통해 그 영화를 다시 봤다. "뭐야? 그 때나 지금이나 여성이 사는 세상은 별로 달라진게 없잖아."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내 나이에서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령대별, 성별 반응이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우리 사회의 균형 축이 조금씩 이동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억압하는 사회 구조'와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여성들의 자유 의지' 간의 충돌에서 생긴 균형축. 하지만 후자 쪽의 승리는 여전히 '종종' 나타나며, 그 종종마저도 여성들의 엄청난 '희생'이 뒤따라야 가능하다.예를 들어 가부장제 의식을 가진 시댁 식구들과의 싸움이 개인적 싸움인 것 같지만 사실은 구조와의 싸움이고, 그런 싸움에서 이겨봤자 '이기적인 여성' 취급 받기 십상이고, 직장내 상관의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 역시 '꽃뱀'이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을 들어야 하는 세상에, 우리는 여전히 살고 있다. 가사 노동을 대체할 가전제품들이 발달하면 사람들은 여성들 편해져서 좋겠다고 한다. 아니 그게 왜 여성들이 편해질 일인가? 처음부터 가사 노동이 여성의 일이라고 못 박고 시작한 오류인 줄 대부분은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여전히 그렇게 길들여지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여성 중에 성희롱 성추행에 해당하는 말 한 번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없다면 그게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해당하는 말인줄 깨닫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다시 델마와 루이스로 돌아가서 보면, 순진하고 착하고 섹시한 - 남성들이 좋아하는 여성상 - 델마나 세파에 시달리며 강한 척 할 수밖에 없었던 이성적인 루이스에게 행복할 자유, 안전할 자유, 존중받을 자유 같은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들을 얽매어 놓은 세상 속에서 그녀들에게 주어진 자유는 딱 하나 뿐이었다. '죽음인가, 감옥인가.' 마지막 선택은 그녀들에게 허락된 '유일하게 자유로운 선택'처럼 보였다. 우리네 삶에서 선택은 자유인 것처럼 교묘히 포장되지만 사실은 포장지만 자유라고 써 있을 뿐 내용물은 억압일 때가 많다. 델마와 루이스가 그 낡은 컨버터블을 하늘로 - 혹은 절벽으로 - 모는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통괘한 슬픔을 느낀다. 하늘과 자유의 이미지가 절벽과 죽음의 이미지와 중첩되기 때문이다. (아, 진짜 리들리 스콧의 역량은 대단했다. 로드 무비의 형식을 빌어 아름다운 자연을 표현한 것이나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구성이나 여성 두 명이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한 것도 훌륭했지만 특히 엔딩 컷은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네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가? 델마와 루이스를 보면서 생각해 보게 된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균형축은 여전히 많이 치우져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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