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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등 바람 빠지는 소리 마시길

사회선생 2018. 10. 10. 08:35

아주 오래 전 가스 폭발 화재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적이 있다. 수 십 층 높이의 빌딩보다 더 높은 불기둥이 치솟고 있는데, 수백대의 소방차가 뿜어대는 물이 꼭 장난감 자동차들이 물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마치 큰 건물에 불이 났는데,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이가 오줌으로 불을 끄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 불가능해 보였다. 그냥 다 타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고양 저유소에 불이 나서 하루 종일 탔다고 한다. 콘크리트 뚜껑이 폭파되어 날아가고 수백억원어치의 기름도 같이 날아간 셈이다. 기름 탱크에 불이 뭍었으니 물로 끄지도 못하고 아마 그 가스 화재 사고 현장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거다. 다 타길 기다리는 것 외에는...

도대체 어떻게 관리를 해서 저 모양이야 국민들이 다들 의구심을 갖고 있는 때, 파키스탄 노동자 한 명을 실화범으로 구속했단다. 근처에서 풍등을 날렸는데, 그 풍등의 불씨가 저유소로 옮겨 붙어 화재가 난 것 같다는 거다. 아, 진짜 욕 나온다. 책임몰이할 만한 소재로 딱 좋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저항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 근처에서 풍등을 날리는 장면의 CCTV, 불씨가 저유로소 옮겨 붙어 화재가 났다는 개연성. 그 노동자는 주운 풍등을 날렸다던데, 그 풍등을 거기까지 날아오게 한 초등학교에 가서 학생들까지 잡아 올리지 왜? 아니 풍등을 만들어서 판 업자까지 구속해야 할 판이다. 테러 목적으로 가서 직접 불이라도 붙였으면 무릇 범인이라고 할 만하지만, 어떻게 풍등 날린 걸 범인이라고 하는지... 지금 국민을 바보로 알며, "난 안 그랬어요. 쟤가 그랬대요" 유치원생같이 책임 회피를 하는 거 같다.

송유관 공사의 부실 설비와 관리이다. 공사 특유의 책임 회피, 무사 안일, 복지 부동... 난 자꾸 그런 그림이 잡힌다. 환풍구에 불씨가 튄다고 그게 저장고로 들어가게 했다면 이건 명백한 시설의 문제 아닌가? 아니 밖으로 나와 있는 환풍구에 불씨 하나 튀었다고 저유소가 폭발한다?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환풍구에 안전 장치가 의무화 돼 있단다. 적어도 불씨 하나 튀어서 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런데 우리는?

공사에게 운영을 맡기니 관리 적당히 하며 월급 받아가고.. 민간 기업에 맡기면 끊임없이 되는 것도 안 되게 만들어 돈 버는 데에만 혈안이 되고... 정말 답이 없다. 우리네 기업 경영 윤리는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건지.그 기름이 타고 남은 시커먼 먼지들이 우리 가슴 속에 다 들어가 있는 것만 같이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