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숙명여고 파동

사회선생 2018. 9. 5. 08:52

교사 생활 이십 년이 넘었지만 전교 50등 하다가 전교 1등 하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아주 드물게 전교 10등 언저리에 있다가 1등 하는 학생은 본 적 있다. 과거에는 한 학년 학생 수가 700~800 명이었으니 더 힘들었겠지만, 요즈음 300~400명 정도라고 해도 내신 경쟁이 워낙 치열하기 때문에 이렇게 큰 폭으로 전교 석차가 바뀌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한 학교에서, 그것도 강남의 교육열 높은 곳으로 유명한, 경쟁 치열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다는 학교에서 1학년 때에는 전교 50등과 100등 밖에 있던 쌍둥이 자매가 2학년에 올라와 동시에 학교에서 전교 1등을 했다고 한다. 

엄마들 네트워크 확실하고 그에 따른 소문도 무성한 대치동 학원가에서도 전교 1등이니 얼마나 주목 받았을까. 그런데 그 학생들은 수학 학원에서 우수반도 아니었고, 모의고사를 보는 날에는 등교하지 않았으며, 오답마저 똑같았다고 한다. 이것만 해도 뭔가 좀 이상하다 싶은데, 쌍둥이의 아버지가 숙명여고의 교무부장이라고 한다. 누구나 상식적인 선에서의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상황이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지만 교무부장, 교감, 교장은 모든 시험지와 이원목적분류표를 결재한다.  문항 하나하나, 정답 하나 하나 꼼꼼히 살펴 볼 수 있을 뿐더러 - 그게 그 사람의 일이다- 나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복사, 이기, 카메라 찍기 등이 가능하다.

자신의 딸에게 문제와 정답을 주고, 외우도록 하고, 시험을 봤으니 1등은 됐는데, 하필 교사가 잘못 적어낸 답까지 똑같이 적어낸 데다가, 모의고사 보면 실력이 드러날까봐 아예 등교하지 못하게 하고, 그냥 내신 성적 잘 받아서 서울대 지균 혹은 고대 학교장 추천 정도로 보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추측 가능하다. 누구나 이렇게 추측하고 민원을 제기하니 교육청에서 조사는 나갔는데 위법 행위는 찾을 수 없으니 결국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에서도 증거 못 찾고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 자백을 하겠는가? 증거가 남아 있겠는가? 처음부터 완전 범죄를 모의했다면 쪽지에 써서 넘긴 후 외우고 쪽지는 파기하면 된다.   

입시 만능주의인 우리 사회에서 제도의 허점과 부도덕성이 결합되어 발생한 사건이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 사건을 계기로 학종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내신 믿을 수 없으니 수능만 갖고 대학 가자면, 대학 가는 데에 고등학교 공부 필요없다는 말인데, 그럴 거면 그냥 학원 다니며 문제 풀이 연습이나 시키지 뭐하러 학교 교육을 시킨단 말인가? 학교 현장에서 무슨 문제만 생기면 자꾸 깔때기처럼 '학교 못 믿는다, 학종 폐지하자'고 나서는데, 참 난감하다. 대통령이 부도덕하다고 대통령제 폐지하잔 얘긴 안 하면서 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