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초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의사는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손에 피 묻히고 지저분한 분비물을 넘어 가끔 시체까지 봐야 하며, 매일 아프다 인상 쓰는 환자들만 만나는 직업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유교문화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는 더더욱 기피했으리라...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의사는 힘들지만 그래도 그 만큼의 대가를 받는 선망받는 직업에 속한다. 학생들이 삼수 사수를 넘어 장수까지 하며 의대에 진학하는 이유는 높은 보수와 안정된 직장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3D 업종 중 하나였지만 높은 보수는 가장 좋은 직업으로 거듭나게 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일자리 창출 정책은 임금 격차를 줄이는 것, 즉 3D 업종의 임금을 대졸자 임금 수준으로 올리는 것만이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사회에서는 있던 일자리도 온라인, 자동화로 없어지는 추세이다. 그리고 정교한 로봇까지 가세하여 앞으로 실업률은 낮아지기 힘들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만 용 빼는 재주가 있겠는가? 무에서 유를 창출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네 노동 시장 상황을 살펴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학 진학률을 가진 나라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졸자 실업 문제 역시 매우 심각한 나라이다. 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 대학 나와서 저임금의 육체 노동을 하며 살 수는 없으니 대학 나온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한다는 명분 하에 실업자가 되어 청춘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3D 업종이라 불리는 중소기업의 육체노동 직종에는 일 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다. 일할 사람이 없으니 외국인 근로자들이 그 업종을 채워가고 있다.
일할 사람이 왜 없을까? 힘든 만큼 대가라도 주어지면 되는데, 일은 힘든데 근무 환경도 열악하고, 저임금이다. 누가 일하겠는가? (배가 불러서 그렇다는 말은 하지 마시길. 들어간 비용이 있는데 그걸 다 포기하며 밑지는 장사를 하려는 사람은 없다. 그들에게는 실업이 더 경제적 선택이다.) 나는 국가 실업 정책의 주안점이 임금 격차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임금에 개입하여 우리 사회의 최고 임금과 최저 임금의 격차를 줄이는 것만이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향 조정의 재원은 높은 임금의 하향 조정으로 얻어야겠지. 자본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경제적 효율성을 크게 훼손한다고 여길지 모르겠으나, 자본주의보다 중요한 건 민주주의이고, 경제적 효율성은 측정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따지고 보면 무엇이 효율적인가 역시 매우 철학적인 문제이다.
대학 교수와 대학 수위의 임금 격차가 없다면 누가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 하겠냐고? 걱정하지 마시라. 오히려 정말 순수하게 공부가 좋은 사람들만 공부하게 될 터이니...그러면 대학도 자연스럽게 조정되고, 대학다운 대학이 되고, 고졸자들도 비교적 만족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 내가 우리반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봐도 그렇다. 대졸자와 임금 차이 별로 없고, 취업만 잘 된다면 대학 안 가겠다는 애들이 매우 많다. 아무리 봐도 그게 경제적으로도 훨씬 효율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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