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신사임당과 허난설헌

사회선생 2017. 2. 14. 10:30

조선시대 시서화에 능했던 여성으로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을 꼽는다. 허난설헌과 달리 신사임당에게는 현모양처라는 수식어가 하나 더 붙는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 예술가로 신사임당은 '완벽한' 여성의 모델로 칭송 받아 왔다. 만일 예술가로서만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 많은 기생들이 그랬듯이 - 신사임당은 오늘날 여성의 모델로 칭송 받진 않았으리라.

단언컨대 사임당이 예술혼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오죽헌, 친정에 살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매우 큰 요인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율곡 이이도 친정에서 낳았고, 거의 유년 시절 - 육아에 가장 많은 손이 가고 힘이 드는 시절 - 을 친정에서 보냈다. 48살에 사망했고, 38세까지 오죽헌에서 지냈다니 인생의 대부분을 친정에서 보낸 셈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가 친정에서 살았기 때문에 자유롭게 창작 활동을 할 수 있었고, 조금 더 수월하게 율곡을 키울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간과하는 것 같다. 남존여비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현모양처라는 시대가 요구하는 여성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시대를 앞서가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예술활동을 했다는 결과물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시대로부터 자유로웠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시대를 앞서간 것이니까. 

하지만 모르긴해도 허난설헌처럼 혹독한 시집살이를 했다면 신사임당은 절대로 화폐의 모델이 되지 못했으리라. 반대로 허난설헌이 친정에서, 자신의 재능을 아껴주는 부모님과 자신을 보필해 주는 식솔들과 함께 살았다면 훌륭한 예술작품을 많이 남겼을거고, 자녀 교육에도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을지 모를 일이다.

신사임당은 사회적 억압은 받았을지언정 가정의 억압은 없었다. 하지만 허난설헌은 둘 다 받았고, 그와 같은 정신적 폭행을 이기지 못한 채 27살의 나이에 요절한다. (물리적 폭행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모두 태워달라고 유언을 했다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누이의 천부적 재능을 어릴 때부터 보아 왔던 허균은 그 작품이 아깝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누이의 유언을 무시하고 몇 작품을 몰래 숨겨 두었다가 세상에 알린 것이라니...  조선시대, 얼마나 많은 허난설헌이 살고 있었을까? 타고난 재능을 억누르며 자신의 정체성을 현모양처로만 강요받으면서 살았던 많은 여성들에게 경의를! TV에서 사임당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한다기에 생각나서 몇 자 끄적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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