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자마자 생기부 작업으로 한 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니 수시 모집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학교장 추천서. 한 학생이 나에게 학교장 추천서 인쇄물을 한 장 가지고 온다. 내용은 모두 채워져 있다. 내가 써야 할 부분까지 자신이 아주 일목요연하게 잘 써 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과장, 왜곡해서 써 왔다. 아무튼 도장만 찍어서 자신에게 주면 된다며 책상 위에 두고 갔다.. 딴에는 나의 번거로움을 덜어주고자 자신이(학부모와 합작하여) 최선을 다 해서 작성해 온 것일게다. 추천서를 앞에 놓고 고민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추천할만한 인재는 아니다. 학교 생활에 불성실하고 무책임하며 늘 졸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자기 이익은 열심히 악착같이 챙기는 모습은 봤지만, 공동체를 위한 배려, 희생, 리더십 이런걸 난 전혀 발견하지 못했는데, 지원자의 리더십에는 인정하기 힘든 사실들이 나열되어 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니 모른척 도장 찍어주고 보내? 아님 정색하고 써 줄 수 없다고 되돌려 보내? 이래도 저래도 내 마음이 불편하다.
도대체 이런 추천서를 왜 받는지, 추천서 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사회에서 추천서를 평가 요소에 넣는 전형이라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대학 입장에서야 손해볼 거 없겠지만 정말이지 비교육적이다. 추천해 줄만한 학생들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그런 학생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추천 전형을 이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학교장 도장을 찍어 보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씁쓸하다. 교사 별로 하고 싶어지지 않는 날이 요즘 점점 많아진다. 수업만 하고 싶다. 입시같은 것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서로를 거짓말장이, 뻥쟁이로 만드는 입시 제도가 정말이지 싫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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