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동물 병원 유감

사회선생 2021. 7. 20. 16:18

우리집 토리(푸들 10)가 어느 날부터인가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급기야 할아버지 천식같은 기침을 했다. 동네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심장병 초기에 폐수종도 있다며 심장약과 이뇨제 등을 처방해 주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약을 먹은 토리는 온 몸으로 이야기했다. “기분이 이상해. 뭔가 불편해.” 일단 약을 끊었다.

 

그리고 바로 수의사 선생님에게 찾아가 솔직하게 말했다. ‘약을 먹은 후 아이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 심장병이라기엔 활력이 좋은 편이고, 폐수종이라기엔 수면 시 호흡이 괜찮은 편이라서 큰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고 싶다.’ 친절하고 마음 좋은 수의사선생님은 흔쾌히 소견서와 검사 결과를 작성해 주었다.

 

나중에 동물 키우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알게 됐다. 토리의 수의사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라는걸. 대부분의 수의사들은 자신을 못 믿는거냐면서 불쾌해하며 검사 결과 발급을 거부한다고 한다. 처방전이나 검사 결과는 보호자가 요구하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네 병원이 갖는 한계가 있다. 인간은 동네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든 병은 대학병원이나 전문병원에 가서 치료한다. 이는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매우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이다. 그런데 동물병원에는 그런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이 없다. 전문의도, 2차 병원이라는 것도 수의사법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2차 병원이나 전문병원이라는 명칭은 자신들이 내세운 것에 불과하고, 조금 과장하면 마케팅에 불과한 셈이다. 법에 없다는 것은 국가에서 관리할 필요가 없는 영역이 된다. 어떤 수의사라고 전문의라는 간판 달고 운영할 수 있고, 어떤 수의사라도 2차 병원이라고 명명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최소한의 의료 수준이나 운영 방식 등에서 기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오진으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하는 보호자에게 수 천 만원의 치료비를 청구하며 명예훼손으로 피해자를 고발한 송파의 한 동물병원에서 또 사고를 일으켰다는 뉴스를 보았다. 오진 관련 소송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그 병원에서 입원실의 개를 무책임하게 방치하는 수의사의 모습에 화가 난 내부 직원이 병원의 불법적인 행위들을 고발했다. 그 직원은 자신도 개를 키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비싼 치료비를 부담하며 2차 병원에까지 온 보호자들의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려 인구 1500만의 시대이건만 동물 의료 시스템은 대충 치료하는 수준에 마케팅만 더해진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무엇을 보고 병원을 선택해야 하는지 보호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표준화된 기준이 없다. 최소한 2차 병원이나 전문의 만이라도 제대로운영하기 위한 제도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데리고 간 2차 병원의 응급실이 그냥 내가 데리고 있는 우리집만 못할 수도 있다는 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다.

 

p.s. 거금(?)의 검사비를 들여 대학 병원에서 검사받은 우리집 토리는 토리는 초고도 비만 때문에 기관허탈이 생겼고, 그것 때문에 기침을 했던거였다. 폐수종이나 심장병은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 지금 빡세게 다이어트 중이다. 진짜 살이 빠지면서 기침도 잦아들고, 숨소리도 좋아졌다.

 

[제보] 밤새 피 토하는 반려견…방치하고 잠든 수의사 : 네이트뉴스 (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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