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지배 당하는 것이다.' 일찍이 플라톤이 한 말이다. 그런데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이 말도 별로 실효성이 없는것 같다. 투표권이라도 제대로 행사해서 최소한의 정치 참여는 외면하지 않고 싶은데,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있어서 누가 덜 저질스러운가를 가늠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이 아닌 아닌 '덜' 저질스러운 인간에게 투표를 한다고 해서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하자면, 누가 더 저질스러운지 잘 모르겠다. 저 후보가 더 저질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 동안 권력을 가지고 전횡을 저질러 왔기 때문에 '입증된 저질스러움'이 있는거고, 이 후보가 덜 저질스럽게 보이는 것은 그 동안 권력이 없어서 한 게 없을 뿐, 권력을 갖게 되면 뭐 별반 다를까 싶기 때문이다. 어차피 정치인들의 저질스러움은 유사한거 같다. 단, 권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저질스러움을 아주 적극적 구체적으로 실현(?)해 나갔을거고, 권력이 없었기 때문에 미처 그 저질스러움을 못 보여줬을 뿐이라는 것을 나는 요즈음의 진보라고 자처하는 권력들을 보면서 느낀다. 보수의 적극적이고 뻔뻔한 저질스러움과 진보의 음흉하교 표리부동한 저질스러움이 별반 다르게 보이지 않는데 누구에게 투표를 해야 한단 말인가.
그래서 아직 저질스러움을 미처 실현해보지 못한 소수정당에 투표할까 했더니 - 저질의 역량(?)이 덜 할 것 같아서 - 그 후보도 권력의 밖에서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갖는 도덕성 수준도 못 갖춘 사람인가보다. 그가 젊은날 했던 말과 행동을 보니 아직 보여줄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 저질의 잠재력이 꽤 크다. 아무리 정의를 부르짖으며 노동운동 열심히 했다고 해도 그런 사람에게 투표하는 것 역시 매우 찝찝하다. 살아본 사람들은 알지만 인간이 나이 먹는다고, 혹은 특정 자리에 앉는다고 기질이 변하지 않는다. 폭력적인 사람이, 거짓말 잘 하는 사람이, 법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사람이 갑자기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건 불가능하다. 정말 투표할 맛 안 나는 요즈음이다. 그래도 '덜' 저질스러운 인간을 '촉'으로 정해서 투표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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