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은 팬덤이 없다. 그의 별명대로 '모두까기'이기 때문이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한 쪽 편에 딱 서서 상대방만 까 주면 정봉주 못지 않은 팬덤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맘만 먹으면 정치적 권력도 얻을 수 있었을텐데,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그냥 '까기 전문가'로 자리 매김을 했다.
물론 그의 까기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 항상 옳은 까기만 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 그렇다고 그의 말이 의미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어느 누구의 비판보다 진실성 있게 다가 온다. 그 이유는 일단 누구의 편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언론인과 정치인들처럼 인물과 이해 관계를 중심으로 신념이 왔다 갔다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현상만을 가지고 논리적이고 비교적 정교하게 분석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 신념은 잣대가 될 수 있지만, 정치적 인물이 기준이 될 수는 없는데, 적어도 진중권은 신념이 이해관계에 따라 일관성을 잃거나 특정 인물을 기준으로 신념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진중권은 오마이 뉴스에서 이메일이라는 물증과 당시 증인을 근거로 정봉주에게 성추행을 인정하라고 논리적으로 깠다. 그런데 정봉주는 팬덤을 앞세워 감정적으로 대응하며 물타기를 한다. 정봉주는 사진을 보여주겠다고 하는데 관련 시간의 사진을 분초대로 제시하지 않는한 절대로 증거가 될 수 없다. 지금 정봉주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피해자와 프레시안이 정봉주의 서울 시장 출마를 막기 위해 정치적 음모를 꾸민 것이라고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적인 물증에 대한 반론은 펴지 못하면서- 7년 전 이메일이 조작된 것이라는 증거를 내 놓든가, 7년 전에 그의 성추행을 들었다는 많은 지인들의 증언이 어떤 이유로 조작 혹은 사주된 것인지 밝히든가 - 자꾸 음모론을 주장하며 자신이 무슨 정치적 탄압이라고 받는 사람처럼 코스프레하고 있다.
내가 피해자라도 나는 정봉주의 서울 시장 출마를 막기 위해 지금 터뜨렸을 것 같다. 왜? 저런 부도덕한 인간이 서울 시장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나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그 동안이야 그냥 야인으로, 뒷동네에서 노는 별 볼 일 없는 정치 지망생이었으니 가만히 있었던 거고....프레시안이라는 언론 입장에서야 타이밍 기가 막힐 때에 터뜨리고 싶었을테니 서울 시장 출마한다고 할 때에 기사화한거고... 그 정도면 됐지, 거기에서 무슨 의혹과 의도가 더 필요하다는건가? 피해자와 프레시안이 자유한국당이나 민주당 내 경선 후보자들과 뒷거래라도 했다고? 정봉주가 너무 거물급 후보라 낙마시키기 위해서? 진중권의 주장대로 이건 지금 상황에서는 말이 안 된다.
굉장히 심플한 사건같은데, 이를 무슨 거국적인 음모로 몰아가고 있는 정봉주를 보면 B급 정치인을 넘어 망상증 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뉴스를 보니 가벼운 추행이었나본데, 차라리 깨끗이 인정하고 자숙하다가 다음 기회를 노렸으면 더 좋을 뻔했다. 피해자의 증언대로 뽀뽀 실패 정도면 자숙하고 있다가 나와도 팬덤들이 충분히 봐 주었을텐데, 그리고 팬덤이 아닌 사람들도 '정봉주가 지저분하게 굴지는 않네, 거짓말이나 하는 나쁜 놈은 아닌거 같아.' 이러고 훗날 다시 등장했을 때에 불쌍히 여기며 지지해 줄지 알게 뭔가? 이제 팬덤 이용해 바람몰이 하는 B급 정치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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