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 활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의무감에 강아지 산책 시키는 - 가끔 산책의 주체가 나인지 강아지들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 것 외에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다. 그런 나도 코로나로 가까운 친구들조차 만나기 힘든 상황이 되니 답답하긴 하다. 집콕 생활에서 뭔가 새로운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다. 유튜브로 음악을 듣다가 깨달음이 왔다. '이 피아노 소나타 초등학교 때에 나도 쳤던건데 다시 쳐 보자!'
버리지 않기를 잘 했다고 생각하면서 40년된 피아노를 수리했고, 역시 40년도 더 된 피아노 악보책들을 펼쳤다. 출판된 연도가 1979년, 1980년이 대부분이다. 한창 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책에는 레슨받은 날짜들과 피아노 선생님이 체크한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마 내가 자꾸 틀렸던 부분들이었나보다. 내 기억엔 없지만, 낡고 바랜 책에는 배운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었다.
각각 두 권으로 된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집 중 좀 더 쉬운 모짜르트부터 꺼내 들었다. 낡은 피아노책에는 내가 배운 흔적이 역력했건만 나는 배웠나 싶게 뒤뚱거렸다. 왕초보가 치는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C장조 K545 조차 배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심기 일전 다시 시작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자 작정하고 모짜르트 C장조 K545로 시작해서 며칠 연습했는데 제법 연주 실력이 늘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기억이 완전히 사라진게 아니었나보다. 쓰지 않으니 그 기억은 뇌의 어느 곳엔가 깊히 숨어 있다가 내가 억지로 꺼내려고 노력하니 스물스물 기어 나오는 느낌이랄까. 연습을 하면 할수록 발전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처음 곡은 석 달이 걸렸다면 다음 곡은 두 달이 걸리는 식이었다. 우리 뇌의 신기함이란!
별로 많이 연습한 것도 아니다. 한 주에 두 번 이상 한 시간씩 꼬박 연습한 정도였는데도 조금씩 탄력이 붙는다. 연습하기 전에는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익힌다. 다니엘바렌보임이 있고, 조성진이 있고, 아라우가 있고... 진짜 듣기만 해도 공부가 되는 좋은 선생님들이 참 많다. 유튜브의 기능에 찬사를!
두 번째에는 K332를, 세번째에는 k331을 연습하고 있다. 한 곡을 미스터치 없이 곡의 흐름대로 3악장 끝까지 이끌어가는 정도면 족하다. 마스터? 그건 예술가의 경지에서 하는 말이라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고. 큰 미스터치 없이 규칙을 파악하고 흐름따라 갈 수 있는 정도면 난 족하다. 막상 연습을 시작하니 더 잘 해 보고 싶어서 - 게임에 몰입했을 때에도 비슷한 기분일듯하다 - 자꾸 연습을 하고 싶어져서 피아노방에 방음 시설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비슷한 연배의 지인과 통화하던 중, "코로나로 집콕 생활하면서 느는건 피아노 실력밖에 없다. 나름 스트레스 해소가 좀 된다."고 하자 "이거 너무 부르주와 아냐?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이런다. "야, 초등학교때 동네에서 피아노 학원 한 번 안 다녀 본 사람이 어딨니? 그 때 배운걸 치매 안 걸리려고 40년 지나 재생해 보는건데 그게 무슨 부르주아야?" "그게 부르주아야.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피아노 학원같은거 없었고, 피아노 있는 사람도 없었어." 피아노 좀 친다고 졸지에 부르주아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