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시험 문제 재밌지 않니?

사회선생 2019. 12. 10. 10:15

기말고사 기간이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은 항상 똑같이 외친다. "너무 어려웠어요." 의례 하는 말이라 별로 진실성 있게 와 닿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도 똑같이 답한다. "어려워야 뭔가 하는 거 같고, 흥미롭지 않니? 너무 쉬우면 재미없잖아."  학생들의 표정은 '헐~' 이다. 속으로는 아마 무슨 저런 사이코가 다 있나 할 지도 모르겠다.

나는 학교 시험 출제할 때에 지키는 원칙이 두 가지 있는데 첫째는 철저히 교과서만을 활용한다. 혹자들은 교과서가 너무 쉬워서 그거 가지고 문제를 만들 수 있냐고 하는데, 교과서의 읽기 자료, 탐구 자료, 심화 자료만으로도 얼마든지 문제를 깊이 있게 출제할 수 있다. 둘째는 서술형과 논술형으로 고등 사고력을 측정하는 문제를 출제한다. 물론, 서술형 논술형도 절대로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서술형과 논술형의 차이는 서술형은 자신의 지식을 설명하는 것이라면, 논술형은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충분히 학교 시험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능론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수도 있지만, 기능론으로 분석한 사례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반론을 펴라고 요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자가 서술형이라면 후자는 논술형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난 주관식과 서술형에서 변별을 하려고 노력한다. 선다형은 변별하는 데에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아는 학생과 대충 아는 학생, 전혀 몰랐음에도 운이 매우 좋아서 맞춘 학생은 다르다. 그런데 선다형 문제는 이 세 그룹의 학생들을 변별할 수 없다. 확실하게 이 세 부류의 학생을 변별하려면 정확히 하는지, 대충 아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는데, 그건 면접시험이나 서술형 논술형 문제로 일정 수준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대학입학시험도 수능을  예비고사로 커트라인을 맞추고, 이후에 논술이든 면접이든 정성 평가로 변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수능 만점이라고 그들의 실력이 똑같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정도 성실성을 보인 학생이면 그냥 합격키셔줘야 하겠지만 굳이 학생들 가지고도 학업 능력의 깊이를 변별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단언컨대 그들 사이의 사고력이나 말하기 쓰기 등의 능력은 의미있는 수준 차이가 있을 거다.)

예를 들면 왜 정보사회에는 권력의 위계가 약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지 설명하라고 하면 인과 관계를 정확히 밝혀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자신이 없으니까 문어발식으로 여러 가지를 나열하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논리적인 사고력이 부족해 비약해서 설명하는 학생이 있는가하면, 아예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답을 끄적이는 학생도 있다. 적어도 선다형에서 파악하지 못했던 학생의 지식 수준을 좀 더 고차원적으로 변별할 수 있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같아서는 가치 수준과 설천 수준까지 파악해서 평가하고 싶은데, 학교 현장에서 그게 어렵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대부분의 교사들은 수행평가를 했다는 이유로 서술형, 논술형 출제를 기피한다.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된다. 채점하기 귀찮고, 출제하기도 힘들고 - 대부분 단답형만 낸다. - 공연히 논술형 비슷한 문제를 냈다가는 본인 스스로 완벽하게 채점 기준을 만들어 변별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관리자는 시험지 원안을 최종 검토하면서 평가 방식이나 문항 구성에는 관심이 없고, 띄어 쓰기 하지 않았다고, 들여 쓰기 하지 않았다고 시험지 수정해서 제출하라고 되돌려 보낸다. 50분에 선다형 20문제를 냈다고 시험 시간 대비 문항 수가 너무 적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띄어 쓰기와 들여 쓰기가 문항의 구성이나 문항 수나 시험의 변별도보다 중요한가? 정말 강조해야 할 것이 뭐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