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업무만큼? 권력만큼!

사회선생 2019. 11. 12. 08:48

관료제의 폐단 중에 피터의 법칙과 파킨슨의 법칙이 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이야기하고 싶다. 무능한 사람이 승진해서 일 하려면 자신의 말에 복지부동해 주는 수하 직원들이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그들을 늘려 나가며 방만하게 운영하며 효율은 떨어뜨린다고. 무능한 자가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이나 필요 이상의 인원들로 조직이 방만해진다는 파킨슨의 법칙은 다른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는 셋트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무능한 상사가 움직이려면 그를 지지해 주는 수하들이 많아야 하는데, 그들에게 전리품을 주지 않고는 충성 부대가 되기 힘들고, 그 충성부대에 포함되기를 거부하는 혹은 못하는 조직원들(?)은 충성부대가 했어야 할 일들까지 맡아서 하며 업무 과중으로 죽어난다. 조직 전체의 인원은 한정돼 있으므로....  

국회의원 보좌관 수가 9명이나 되는지, 오래 전에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는 동기들이 몇몇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몰랐다.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학교 생활을 오래 하면서, 세상 일을 많이 경험하면서 알게 됐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능하면 적게 일하고 많이 가져가며, 자신의 뜻대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권력이고, 그 권력은 어느 조직에서나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국회의원들은 이구동성 말할거다.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알아? 보좌관 9명으로도 부족하다고!'

그런데 몇 명을 줘도 부족할거다. 어차피 무능력한 사람이 많아서... 대부분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업무를 최대한 아랫 사람에게 넘기고, 자신은 그 일의 공만 가지려고 한다. 과가 나오면 그건 아랫 사람에게 준다. 그렇게 하려면 하수인(?)들이 필요할게다. 점점 그들의 하수인들이 많아질수록 조직 체계 내에서 아랫사람(?)들은 과중된 업무와 책임 부과로 힘들어진다.  인원은 한정돼 있는데, 하수인들에게 혜택을 주려면 누군가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빼앗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법칙은 없나? 나올 법한 법칙인것 같은데...)

학교 조직도 조직이라고 아주 유사한 권력의 속성이 보인다. 부장도 권력이랍시고, 예전에는 한 두 사람이 맡아서 했던, 그리고 충분히 할 수 있을 만한 업무를  아랫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예를 들면 교장이나 교감은 학교의 가장 중요한 업무인 '수업'을 하지 않는다. 관리만 한다. 그리고 교장과 교감을 지지해 줘야 할 책임을 가진 부장들은 그 댓가로 수업 시수와 비담임의 혜택을 나눠 갖고, 업무 조차도 충분히 혼자서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모두 아무런 혜택같은 것도 없는 아랫것들(?)에게 나눠준다. 충성에 대한 댓가로 여기는 것 같다. 책임? 어차피 부장도 평교사라 책임같은 것은 지지 않는다. 

나는 왜 교사에게 관리만 하는 지위가 따로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교장이나 교감도 수업하고, 상담해 봐야 요즘 애들이 어떤지 좀 알텐데... 그런걸 해 본지 오래 되어서 맨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야기만 한다.  

교장 교감 입장에서는 더 많은 부장들을 거느리고 그들을 통해 일을 처리하는 것이 훨씬 편하니까 최근의 학교들에서는 부장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선교부장, 창체부장, 방과후부장, 인문사회부장, 학년부장 등은 아무리 봐도 부원을 그렇게 두고 시킬 만한 일이 많은 부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장이 생겼으며, 그 부장들은 또 많은 부원들을 거느린다. 그리고 교장은 이를 묵인한다. 자신이 권력으로 그들을 부리기 위해 필요한 장치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교장 교감 입장에서는 그들을 부리기 위해 혜택도 주고, 사람도 준다. 부장은 업무라고 할 만한 것들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많은 부원을 거느리고 - 충분히 한 두 명 정도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렇게 운영하는 양심적인 학교들도 제법 된다. - 그들을 닥달하며 성과를 내고, 그 성과의 공은 자신이 갖는다. 교장이 자율학습 많이 시키라고 하면 부장은 그 이야기를 담임들에게 전달하며 압박하고, 그래서 자율학습생이 많아지면 부장이 훌륭하다고 칭찬받는 식이라고나 할까? 비담임의 혜택, 동아리 시수 배제, 수업 시수 적게 주고, 일 시키라고 사람은 많이 준다. 어느 조직이나 업무는 제로섬이다. 누군가 많이 하면 누군가는 적게 할 수밖에 없다. 권력 없는 교사들만 죽어난다. 담임하면서 수업하면서 업무하면서....하긴 교감이 말한 적도 있긴 하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그런 상황들을 늘 목격하고 있자니, 국회의원 보좌관이 9명이라는건 학교랑 비교하면 별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들도 똑같이 말할거다.'일이 얼마나 많은지 아냐? 9명으로도 부족하다.' 학교에서 부장들도 똑같이 말한다. 하지만 막상 그들에게 그럼 부장 대신 담임하라고 하면 그 이야기는 쏙 들어간다. 투덜거리는 국회의원에게도 똑같이이야기하면 될 거 같다. 그럼 국회의원하지 말고 다른 일 찾아보라고... 권력의 크기는 차이가 있어도 권력의 속성은 동일한 것 같다. 적게 일하고 많이 가지며 책임은 최대한 나눠 지자는...

내가 너무 삐딱한가? 무능력한 아랫것의 푸념이다. 

(학년부장 책상 위에 정기고사 안내를 위한 가정통신문을 올려두었더니 이걸 나눠주는 건 부장의 일이 아닌데, 왜 내가 해야 하냐며 짜증을 낸다. 거기에는 두 가지가 들어있다. 권위의식과 합리성으로 위장한 이기주의. 일을 기계적으로 세분화해서 아랫 사람들에게 다 미뤄놓고 마치 매우 합리적인 듯 구는 부장들의 작태를 보고 있자니 그것도 권력이라고 유세 떠는 것에 실소가 난다. 결국 권력만큼 자신의 업무는 최소화시키고, 아랫 사람에게 정당한 듯 밀어내는 작태를 또 경험하고 있다. 그나저나 학년 부장은 무슨 엄청나고 힘든 일을 하기에 가통 주는 일을 하면 안 될까?  그리고 학년부장의 일이 정말 뭘까? 궁금하긴 하다. 교장의 명령을 '성의있게' 하달하는 거? 교무부장은 내게 훈계다. 네 일이니 네가 담임들 책상 위에 모두 놓아줘야 한단다. 담임들 거치지 말고 직접 학생들에게 나눠주라고 하시지 않아서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