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조퇴와 수행 평가

사회선생 2019. 5. 20. 12:37

2교시 끝나고 학생 세 명이 내려왔다. 몸이 안 좋다며 조퇴시켜 달란다. 왜 월요일 2교시에 동시에 조퇴를 하려고 할까? 이상하다 이상하다 싶어서 이리저리 물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3교시에 체육 수행 평가가 있는거다. 다른 과목이야 그냥 안 내고 안 하면 그만인데 체육 시간 수행 평가는 안 한다고 버티기가 분위기상 힘들단다. 우리네 생각으로는 체육 시간에 시늉이라도 해서 성의 표시라도 하면 될 거 같은데 체육 시간에 무엇인가를 한다는 건, 그들에게는 '엄청난' 일인지라 차라리 조퇴를 선택한거다. 결국 세 명은 머리아파요, 배 아파요, 기침이 너무 심해요 제 각각의 이유를 대면서 조퇴를 했다. 그리고 담임인 나는 아무리 그 이유를 짐작한다고 해도 그 애들을 말릴 수는 없다. 내 추측대로 말렸다가 진짜 병이 있었는데 그게 악화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담임 교사인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수행 평가에 참여해. 하기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은 미루지 말고 하는거야. 그냥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 따위의 교육(?)을 할 수 없다. 그냥 원하는 대로 가서 쉬라고 해 줄 수밖에...  

사실 조퇴를 하겠다며 온 학생 세 명은 공통점이 있다. 중간고사 평균 점수 20~30대로 공부에는 하나도 관심이 없는 학생들이다. 거의 하루 종일 휴대폰만 보며 놀다가 자다가 혹은 멍때리다가 하교한다. 그런데 체육 시간은 잠을 잘 수도 없고, 휴대폰을 볼 수도 없고, 심지어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그들에게는 가장 피하고 싶은 시간인데, 심지어 수행 평가까지 한다니 참기가 힘들었던게다. 아이들 앞에서 자신들이 못 하는 것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2교시에 우루루 조퇴하겠다며 내려온 이유가 이해는 됐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만 스트레를 받는게 아니다. 못 하는 학생들도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존감도 낮고, 성취 동기도 없고, 심리적인 안정감도 매우 약하다. 수업 시간에 알아 듣지도 못하겠고, 그냥 하루하루 적당히 지내며 시간을 떼운다. 그들에게 스마트폰은 그 시간을 재미있게 떼우게 해 주는 데에 딱이다. 우리는 아무 것도 그들에게 해 주지 못하고 있다. 강제하지도 못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게 하지도 못하고 그렇게 그들을 방치하고 있다. 강제적으로 무엇인가를 시키면 인권침해라고 할거고 - 난 그들에게 직업과정을 추천하고 싶은데 - 그냥 내버려 두면 직무 유기라고 할 거다. 정말이지 무력화된 학교에서는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리고 아쉽게도 그런 학생들의 경우, 부모라고 크게 학생 교육에 관심 있는 경우는 드물다. 참 안타까운데, 답이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