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감각은 시대를 앞서간다
1990년대 초반, 중학생 과외 알바를 하고 있었다. 그 때 그 학생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서태지 알아요?" 한 번도 들어본적 없는 이름이었다. 학생은 내게 서태지 사진까지 들이밀며 진짜 너무 멋있다고 노래도 좋다고 서태지를 모르는 나에게 '전도'하고 싶어했다. 데뷔 전의 서태지를 내가 알 리가 있는가? 사진으로 보는 서태지는 뭐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여리여리 소년같았는데, 그런 말을 들은 지 몇 달이 지난 후 서태지는 한국 가요계를 평정했다.
2010년대 초반인가보다. 한 학생이 책상 위에 남자 사진을 크게 하나 올려 놓고 있기에 나는 어느 그룹의 아이돌이냐고 물었다. 학생들이 빵 터졌다. 박보검이란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래서 얘는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사진을 가진 학생이 말해 줬다. 지금 명지대 뮤지컬학과에 다니는 학생인데 연기자라고, 아직 별로 유명하진 않은데, 진짜 잘 생기지 않았냐고 확인받고 싶어했다. "뭐... 그렇게까지 잘 생겼다고 하기에는... 잘 모르겠다." 지금 박보검은 그냥 그 존재 자체로도 인기가 하늘을 치솟는 연기자가 돼 있다.
방탄소년단도 그렇다. 난 방탄소년단이 데뷔했을 때에, 이름도 촌스럽다며 빅뱅같이 성공할 수 없을 거 같다고 했다. 그렇게 잘 생긴 것 같지도 않고, 기존 보이 그룹과 차별화된 것도 모르겠다고... 학생들은 내게 빅뱅은 이제 한 물 갔다며 방탄의 시대가 올 거라고 예측했다. 그들의 예측은 적중했다.
도대체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들은 어쩜 그렇게 연예인을 보는 '촉'이 발달돼 있을까? 뜰 애들을 귀신같이 알고 예측할까? 난 아무리 봐도 모르겠던데.... 잘 생기고 예쁜 것을, 감각적인 음악을 선별하는 촉이 기성 세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정확하게 대중문화 시장을 예측하고 움직인다.
TV CF에서 박보검이 보인다. 박보검을 볼 때마다 학생들이 생각난다. 이미 오래 전에 그의 스타성을 예측했던 학생들이. 그들의 취향에 따라 대중문화가 움직이는건지, 그들의 대중문화 동향을 예측하는 능력이 뛰어난건지, 둘 다 관계가 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기성세대에게는 안 보이는 것들이 그들에게는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대중문화 발전의 가장 큰 공은 청소년들에게 돌려야 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