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과 수능과 입시
벌써 3년 전 일인가보다. 통합사회 교과서를 집필할 때에 교육부에서 필진과 편집팀을 대상으로 한 연수를 많이 시켰다. 통합사회 교과를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확 바꾸고 싶은데 기존의 교수나 교사들이 지식 중심 교육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우려때문이었던 듯 하다. 집필 과정 내내 활동 중심, 과정 중심, 학생 중심으로 구성하라고 압력을 받았다. 두 페이지에 내용 서술 서 너 줄 들어가고, 활동이 두 개 들어가는 면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 다음에 들리는 이야기를 들으니 앞뒤가 안 맞았다. 이걸로 수능을 본다는거다. 아니 내용 중심, 지식 중심이 아닌데 이걸로 5지선다 지필 고사인 수능을 보겠다니... 수능이 자격 고사 정도라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주 기본적인 개념이나 방법론을 묻는 수준에서 출제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네 수능은 선발고사 역할을 하는 시험 아닌가? 그런데 과정 중심으로 만든 교과서인 통합사회로 출제를 하겠다니... 그 때에 깨달았다. 우리나라 교육부가 맛이 갔다는 것을.
교육부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휘둘리고 있었다. 학생들의 고등 사고력 신장에 기여했다고 폼은 잡고 싶은데, 막상 수능을 보게 하려니 과목특성상 별별도 있는 문제를 만들기 불가능하고 - 선택 과목과 차별화할 수가 없다 - 난관에 봉착했다. 결국 멋지게 수능 개편안 칼을 뽑았다가 그 칼을 여론이라는 명목 하에 국민에게 가지라고 돌려주더니 국민들끼리 합의(?)가 안 되니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며 접었다. 몇 년 동안 이리저리 국가 예산만 탕진하고 결국 제자리. 그리고 통합사회는 수능에서 제외한다는 발표와 동시에 학교에서 '그까이꺼 대충 그냥 이수만 하는, 교사 시수 맞춤용 과목'으로 전락해 버렸다.
서울시 교육청에서 수행 평가를 강화한다는 발표를 했다. 나는 통합사회를 둘러싼 일련의 해프닝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나라 교육 제도를 입시 제도가 흔들고 있는 한 제대로 된 수행 평가는 불가능하다. 점수 주기 위한 수행 평가, 생기부 써 주기 위한 수행 평가로 전락한다. 통합사회가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지금 이렇게 별볼일 없는 과목이 된 것처럼.
교육청 방침이라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고 따를 모범생의 정석인 우리 교장선생님마저 교육청의 수행 평가 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수행 평가 축소해 주십시오.그건 중학교 때에나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대학 잘 가게 해 주는 것이 역할입니다. 지식의 양을 극대화하여 수능 시험 잘 보게 해 주십시오. 강의 중심, 지식 중심 수업을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 강력히(?) 호소했다.
교육 과정보다 상전인 입시 제도와 입시 정책. 언제까지 이렇게 흔들어 놓을 건지, 제발 일관성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적어도 혼란스럽지 않게 교사가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엉망진창인 수행평가도 어렵고, 시대와 학생은 변하는데 80년대 식으로 모르면 외우라며 죽어라 주입식 강의 수업하는 것도 영 개운치가 않다.
https://news.v.daum.net/v/20181212132738427?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