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한계에 봉착했다
불수능이라고 아우성인가보다. 쉽게 내면 변별이 안 되어 혼란스럽다고 난리고, 어렵게 내면 학교 공부만 가지고 어떻게 수능을 보냐고 난리다. 수능은 한계에 봉착했다. 교과서 수준으로만 출제하면 변별을 할 수 없고, 어렵게 출제하면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렵게 출제되는 문제들은 그야말로 '문제를 위한 문제', '틀리게 하기 위한 문제'인 경우가 많다. 출제진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내용으로 문제를 점점 진화시켜야 한다. 진화가 인위적으로 되는 것인가? 돌연변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돌연변이 문제가 변별의 척도가 되고, 그런 문제를 잘 푸는 능력이 훌륭한 대학 수학 능력이 돼 버린다. 과연 그런 돌연변이 문제 풀이 능력이 중요한 대학 수학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가? 동의하기 어렵다.
실제로 수능에서 어려운 문제들은 교육 과정 밖의 문제들이거나 뻔한 사실을 실수하기 쉽도록 아주 교묘하게 뒤틀어 버린 문제이다. 예를 들어 사회문화의 경우에는 표 분석 문제로 변별을 한다. 실제로 교과서에서는 표를 분석하는 수준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비율의 추이 정도를 판단하면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 수능에서는 그렇지 않다. 교과서의 주요 개념과 원리만으로는 변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돌연변이 문제가 출제된다. 교과서의 내용은 정해져 있고, 학생들은 기출 문제로 꾸준히 훈련하고 있고, 기존의 유형과 유사하면 출제하는 사람들은 어렵게 느껴도 학생들은 별로 어렵게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어렵게 출제해도 만점짜리 학생들이 속출한다. 그래서 어렵게 출제해도 다수는 징징대지만 표점은 높아지고, 잘 보는 학생들은 여전히 더 잘 본다. 수능을 어렵게 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학교에서 학원처럼 수능 잘 보게 가르칠 수 있다. 교과서고 뭐고 작파하고, 기출 문제로 연습하고, 주야장창 학교에서 문제를 이리 저리 뒤틀고 변형시켜 문제 풀이 연습만 하면 된다. 장담하는데, 적어도 사회탐구는 그렇게 문제 풀이 연습만 죽어라 하면 최소 2등급은 받을 수 있다. 1등급은 돌연변이 문제에서 갈리기 때문에 죽어라 연습을 해서 동물적인 문제 풀이 능력과 감각까지 갖게 된 학생들의 몫이 된다. 실제로 재수생들이 수능에 강한 이유는 그 만큼 더 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가 수능 문제 잘 풀게 연습시켜 주는 곳이어야 하는가?
국가 고사인 수능은 그야말로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잘 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교과서에 충실하게 기본 학습 능력을 점검해 주는 수준이면 된다. 대학 갈 자격을 부여하는 기준으로 활용되는 것이 수능의 목적에 부합한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기본적인 학습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대학에서 필수 기본 전형 자료로 활용하면 된다. 그리고 더 고차원적 능력을 보고 싶다면 현재 수시에서 활용되는 평가 요소인 면접과 논술을 본고사 형식으로 도입하면 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구성하여 쓰거나 발표하는 능력은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의 오지 선다에서 답을 고르는 능력보다 훨씬 더 유용한 능력 아닌가? (학교 수업도 이젠 단순 강의식에서 벗어나 읽기, 쓰기, 말하기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혹자들은 수능만으로 대학 가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하는데, 수치로 나타난다고 해서 공정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 지역별 서울대 정시 합격자 수를 보면 서울의 특정 지역 (소위 집값이 싸다고 하는) 에서는 정시 합격자 수가 매우 적다. 심지어 없는 지역도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수능 만능이 되면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힘들고, 지역 간 입시 격차는 더욱 심해지며, 공교육은 황폐화되고, 학생들은 정말 중요한 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P.S. 수능 사회문화. 국가 교육 과정에는 재사회화의 개념밖에 없음에도 모의수능과 실제 수능에는 예기사회화니 탈사회화니 하는 개념이 출제되었다. 이의 제기를 하면 수능 특강에서 다루기 때문제 문제가 되지 않는단다. 아니 어떻게 국가의 교육 과정보다 한 출판사의 교재가 우선 적용된단 말인가? 이게 정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