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체육복 등교를 허해 달라는 대자보가 붙다

사회선생 2018. 10. 23. 09:32

자신을 3학년 재학생이라고 밝힌 한 학생이 체육복 등교를 허해 달라며 장문의 대자보를 붙였다. 만일 이 대자보를 그냥 떼면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차라리 교복을 폐지하고 사복을 허해 달라면 동의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츄리닝 등교를 공식적으로 허용해 달라면서 무슨 엄청난 인권 탄압이라도 받는 것처럼 이야기하니 참 씁쓸했다. 게다가 신경질적으로 학교에서 그 대자보를 떼었다는 소문이 돌아서 학생들이 들불처럼 일어나 대자보가 붙었던 자리에 엄청난 양의 포스트 잇이 붙으며 많은 학생들이 대자보의 내용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런 해프닝 직후 수업 교실에 들어가 보니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학생들이 내게 선생님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다. 나는 '말은 말한 사람의 의도와 본질이 듣는 사람의 감정과 기분대로 왜곡돼어 전달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민감한 시기에는 별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너희들이 원한다면 이야기해 주겠다'고 하며  두 가지 이유에서 츄리닝 등교에 반대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1. 학교는 배움의 장이다. 학생 간, 학생과 교사 간, 교사 간에 예의를 갖추어 행동해야 할 공식적인 기관이다.옷은 상호 간에 예의를 갖추는 기본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교사들도 츄리닝 입고 출근하지는 않는다. 너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도 편한 것만 따진다면 그냥 집에서 입던 츄리닝 입고 오면 된다. 하지만 이건 상호 간에 지켜야 할 예의를 저버리는 행동이다. 그래서 난 개인적으로 너희들의 츄리닝 등교  허락은 할 수 없다. 

2. 교복에 관한 연구도 많다. 영국이나 미국의 사립학교는 대부분 엄격한 교복 규정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공립학교는 사복이다. 갈등론자 중에는 사립학교는 엘리트를, 공립학교는 평범한 노동자 계급을 양성하기 때문에 복장을 통해 미리 문화를 사회화하는 것이라고 하는 학자들도 있다. 나도 무엇이 옳은지 모르지만 적어도 너희가 사회에 나가서 다양한 직종의 다양한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그리고 츄리닝 입고 출근해도 되는 직장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안다. 격식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단정한 옷차림이 필요하다. 그런 훈련은 생활 속에서 하는 거다. 학교는 사회인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츄리닝 등교는 허용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두 가지 이유를 말해 주며 이견이 있으면 자유롭게 이야기해도 좋다고 하자, 학생들은 내가 어려워서 그런지, 자신들도 듣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 그냥 수긍하는 듯 했다. 츄리닝 등교라... 스트레스 많이 받고 있나보다. 학교에 와서 체육복 입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체육복 입고 등교하게 해 달라고 하며 교복 입으라고 하는 것도 인권 탄압이라고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인권에 대해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