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유화가 유감이 아니라
이제 금발 머리 휘날리며 등교를 해도, 녹색 레게 파마 머리를 하고 와도 학교에서 규제하긴 힘들어질 듯 하다. 교육청에서 두발규제를 완전 없애라는 지침이 발표됐기 때문이다. 앞으로 닥칠 일을 시기적으로 앞당겼을 뿐, 개인의 인권 의식에 부응하는 조치였을게다. 하긴 그런 모습으로 등교해도 규제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규제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게 더 폼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 학교가 규제를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거야' 그럼 위안이라도 될테니... 그리고 솔직히 그런 규제는 시대착오적이다. 이제 타투와 피어싱이 남았는데, 이건 어떻게 할 지 두고 볼 일이다. 심신의 건강을 위해 금지가 맞다고 생각하지만. 내 몸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데다가 학부모마저 내 딸이 하고 싶어한다고 허락했다는데 교사가 무슨 권한으로 금지할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금발 머리 소녀나 타투 소녀들이 없었던건 아니다. 수능 끝나면 교칙 무시하고 금발 머리로 등교하는 학생들이 한 반에 한 두 명 이상 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학생을 제어하지 못했다. 인권이 어쩌구 이러면서 갈 데 까지 가 보자고 나오면 학교가 진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교칙은 지키는 사람은 바보되고 일탈자는 영웅이 되는 모순을 초래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그런 규제 자체를 없애는 게 나았을거다. 이해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조치들이 달갑게 여겨지지 않는 것은 개인의 인권에는 그렇게 발빠르게 앞서 나가는 교육 기관이 개인 간, 학교 간 경쟁에는 목숨 걸고 있다는 것도 웃기고. 학교 공동체의 질서가 무너지고현상을 외면하고 있는 것도 한심하다. 왜 항상 큰 그림은 애써 안 보고 (안 보이고?) 작은 그림만 보면서 인기에 영합하려고 하는지.
불필요하고 과다한 경쟁으로 학생과 학교가 힘들어지고, 청소년 자살율은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이고, 학교 공동체는 지금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고 입시에만 목적을 맞춘 채 소수를 위한 곳으로 전락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자꾸 개별 학교의 경쟁력만으로 돌리며 면피하고 싶어하는 교육부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 어차피 거시적 접근은 벅차고 무서워서 못 한다고 치자. 그럼 미시적으로 학교 공동체의 질서 유지를 위해서, 학교의 온전한 기능 수행을 위해 교육청은 뭘 하는지? 학생이 학교 기물을 파손해도, 휴지를 아무 데에나 버리고, 자기 자리를 쓰레기 통으로 만들어 놓고 다니고, 친구와 교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해도 학교에서 징계 하나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 뿐인가? 지각 결석을 마음대로 해도, 수업 시간에 잠만 자도, 학업 성취 수준이 어떻게 되든 말든 졸업장을 꼭 쥐어준다. 아무리 봐도 졸업 자격이 없는데, 졸업장을 쥐어준다.
학교는 공동체이고, 이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넘어 지켜야 할 공동체의 원칙이라는 것이 있건만 (자기 자리 청소도 해야 하고, 쓰레기 분리 수거도 해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 입히면 안 되고, 질서를 지켜야 하고, 수업 시간에는 공부도 해야 하고... 기타 등등) 그런건 하나도 없다. 그냥 필 꽂히는 대로만 살다가 졸업한다. 도대체 원칙이라는 것이 무색해지는 것 같은데, 교육부는 아무 것도 못 하고 손 놓고 있다. 점점 부적응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학교를 들락거리고 잠만 자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걸 개별 교사에게 맡겨 놓은 채 수수 방관하고 있는 교육청이 학생들 머리는 각자 알아서 예쁘게 하고 다니라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닌데 그게 중요한거 같지 않다. 제발 개별 학생의 인권을 생각한다면 지금 학교가 어떻게 황폐해지고 있는지 좀 들여다보길! 다음 주부터 시험이라 오늘은 수업 시간에 자습 시간을 줬다. 2명은 결석, 2명은 조퇴한 어느 3학년 교실에 있는 30명의 학생 중 10명은 공부하고 20명은 잔다. 깨우면 예의 좀 있는 학생은 아픈 척, 보통 학생은 피곤한 척, 학교가 싫은 학생은 깨워도 안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