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생기부와 추천서, 교사의 권한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사회선생 2018. 9. 14. 08:35

교감선생님이 교사들에게 과목별 세부 능력 특기 사항 1600바이트를 꽉 채워주라며 그건 학생의 권리라고 했다. 생기부에 어떤 내용을, 어떻게, 얼마나 기록하는지는 교사의 권한이라고 생각하는데, 학생의 권리라니...  교사의 판단대로 생기부 기록했다가 학생 마음에 안 들면 권리 침해 당했다며 소송이라도 할 판이다. 권리라니... 추천서도 그렇다. 추천서도 교사의 권한이다. 추천할 지 말 지, 어떤 내용을 어떻게 기술할 지는 교사의 판단으로 결정하는건데 실제 학교에서는 학생의 권리로 둔갑한다. 추천서 써 달라고 통보(?)받으면 이걸 거절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추천하고 싶지 않은 학생이라도 거절하기 어렵다. 추천을 거부하는 순간 학생은 상처받고 교사와의 관계가 틀어지며 이후 학생의 학교 생활이 엉망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4.5등급이 와서 합격할 가능성이 1%도 없는 연대 추천서 써 달라고 해도 안 된다고 거부하기 어렵다. 제대로 학교 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추천서를 써 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보니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과 학부모가 추천서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악용하여 '추천하지 않음'이라고 추천서에 써서 보내기도 한다는데, 대부분의 평범한 교사들은 양심상 그런 짓은 또 못 한다. '대충' 써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런데 서울권 대학 진학도 불가능한 점수를 가지고 있는 학생이 자신은 연대 지원할 거니까 추천서 써 달라고 놓고 가면 정말이지 난감하다. 사회에서는 교사가 학생 상대로 갑질하는 줄 알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갑질하는거 아니냐고 우리끼리 푸념하면서 추천서 열심히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쓴다.

추천서는 없앤다고 했으니 곧 없어질게다. 추천서 문화가 없는 사회에서 추천서는 신뢰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데, 잘 한 일이다. 대학은 추천서를 보고 뽑는 것도 아니면서 왜 자꾸 손도 안 대고 코 풀려고 하는지. 실제로 어느 입사관 얘기로는 카이스트에서 교사가 '추천하지 않음' 이라고 쓴 학생을 뽑았다고 한다. 

늘 지각을 하는 학생의 생기부에 지각이 잦다는 이야기 하나 못 써 주는 것이 우리네 학교 현장이다. 교사가 권한이 많다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교사들은 민원때문에 매우 소극적으로 방어하며 일을 한다. 아마 대부분의 정부 기관들이 이런 식으로 일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식의 업무 풍토는 정말이지 바람직하지 않다. 서로 아무 것도 믿지 못하는 상태가 돼 버릴 수 있을 뿐더러 본말이 전도되기 때문이다. 생기부는 그야말로 학생 기록인데, 그냥 대학입학용 서류로 둔갑한다. 모든 일이 그런 식이 돼 버린다. 

전문성이 있는 사람에게 권한을 주고, 책임을 지우는 것이 맞다. 생기부도 마찬가지이다. 권한이 권력이 되어 갑질을 하기때문에 안 된다고?  교사가 권한을 갖지 못하면 오히려 다른 것들에 휘둘릴 가능성이 많다. 그리고 제대로 교육하기 어렵다. 학생이 교사를 믿고 따르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이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