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만 안 되냐고?
배가 뒤집혀서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한대로 몇 명은 살릴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어린이'라도 살려주자고 한다면 모두 살고 싶겠지만, 대체로 동의할거다. 왜 어린이만 살리냐고, 노인은, 장애인은, 성인은, 임산부는, 학생은 등등 인간의 범주도 나누자면 끝이 없지만 어린이만 살리자는 것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그 때에는 평등이 아니라 인도주의를 앞세우는 것이 정의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나는 개식용 금지 논쟁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많은 동물운동가들이 개식용 금지를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의 머릿 속에는 개라도 먼저 구해주자는 인식이 들어 있다. 그럼 사람들은 말한다. '왜 개만 구해줘야 돼? 소는? 돼지는? 닭은?' 일면 논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들의 주장인즉, 모든 동물은 평등하므로 똑같이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이는 평등하지만 정의롭지는 않다. 다수가 고통을 받는 것이 정의인가? 어린이만이라도 살리자고 하면 왜 똑같은 인간인데 어린이는 봐 줘야 하냐고 주장할건가? 어린이라도 살리자고 하면 불평등한건가? 정의는 평등보다 상위의 개념이다. 그리고 정의는 절대적 고통의 양을 최소화하는 데에 있다.
만일 그들이 개식용 금지를 법제화하자는 주장에 대해 '소는? 돼지는? 닭은?' 이라고 하면서 개만 봐 주지 말고, 얘들도 모두 잡아 먹지 말자고 한다면 이건 평등하며, 정의롭다. 절대 고통의 양을 줄이는 것은 분명 정의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사회적으로 이는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다. 축산업이나 낙농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거대한 경제적 축일 뿐더러 인간의 식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하나는 고통에서 제외해 줄 수 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다른 동물들의 고통이 더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럴 경우에 누구를 먼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것이 옳은가? 어린이가 될 것인지, 노인이 될 것인지, 임산부가 될 것인지는 나름의 논리가 있을 수 있다. 소가 돼야 한다, 고양이가 돼야 한다, 개가 돼야 한다는 것 역시 나름의 논리가 있다. 그리고 그 논리에서는 단연코 개가 우선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개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도록 길들여진, 인간의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인간의 가장 친밀한 반려자로 함께 존재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언어와 인간의 표정을 가장 잘 읽는 능력을 오랜 인간과의 생활로 인해 유전자에 각인돼 있으며 이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평등하므로 똑같이 고통받자는 것보다 고통 속에서 한 명이라도, 한 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그들을 구하는 것이 정의롭다. 왜 소와 돼지와 닭은 안 되냐고 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소와 돼지와 닭도 식용 금지하자고 한다면. 흔쾌히 찬성해 주겠다고. 그건 정말 평등하고, 인도주의적이며, 정의롭기 때문에....
복날이 될 때마다 남의 집 개들이, 주인없는 개들이, 나쁜 주인 밑에 있는 개들이 걱정된다. 이런 걱정이 필요없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개식용 금지 법제화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