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수첩

교사가 갑질하긴 힘들어진 세상인데....

사회선생 2018. 7. 9. 15:40

학종 확대가, 아니 적어도 축소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면 많은 학부모들은 교사들이 갑질하려고 한단다. 교사들이 권력 잡고 자기들 마음대로 학생들 쥐락펴락 하고 싶어서 학종을 유지시키고 싶어한다는거다. '교사를 믿을 수 없다, 선다형 평가만 믿겠다'는 거 같은데 안타까운 일이다. 가만히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곧 학교 무용론이 나올 차례이다. 교사 못 믿겠다, 교사 평가 못 믿겠다, 학교가 솔직히 뭐 해 주냐? 학교 필요없다!  

교사가 갑질하고 싶어서 학종을 지지한다고 믿는 학부모들이 많다.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학부모들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그랬다. 교사가 눈만 한 번 부라려도 그냥 납작 엎드려 절대 복종하던 시절이 있었다. 교사는 되는 것도 안 되게 하고, 맞는 것도 틀리게 하고, 잘못 없어도 잘못했다고 할 수 있는 '권력'이 있었다. 분명히 학부모들은 경험했을거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이다. 학생이 눈 한번 흘기면 교사는 '쟤가 왜 저럴까, 무슨 일일까, 내가 뭐 잘못했나, 내가 어떻게 풀어줘야 하지?' 걱정한다. 아니라고? 제발 학교 현장에 가서 요즘 학생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교사들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한 번 들여다 봐 주길 바란다. 물론 지금도 막 가는 갑질 교사가 있다지만, 막 가는 갑질 교사를 제재하는 방법도 있다. 교사의 갑질을 실명 밝혀서 낱낱이 교육청에 민원 한 방 넣으면 된다. 낱낱이 일거수 일투족을 고발하시라. 그럼 어떻게든 해결 비슷하게라도 되지만, 막 가는 학생은 교사들이 해결할 길이 없다. 그냥 혼자 알아서 수용해야 한다. 해결은 불가능하다. (오늘, 기말고사 중. 몇몇 학생들은 답안지에 이름도 안 써 놓고 그냥 잔다. 깨워서 이름이라도 쓰고 찍기라고 하라고 말하면 눈 흘긴다. 그리고 안 한다. 그냥 잔다. 빈 답지를 그냥 낼 수 없어서 교사가 사정사정하며 달래서 이름만 채워서 가지고 온다. 이름을 안 채우면 결시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얘나 학부모나 담임이나 담당 교사가 아주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요즈음의 학생들은 교사가 갑질하는걸 가만히 보고 있을 만큼 소극적이지도, 인권 의식이 둔하지도 않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이다. 대학 입시를 쥐게 되면 갑질할거라고 걱정하지만, 교사가 갑질하는 시대는 유감스럽게도 끝났다. 갑질하는 교사들보다 갑질을 알아차리고 이에 저항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교사들이 학종에 반대하는 이유는 - 적어도 대부분의 교사에게는 - 무너진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에 있다. 학부모들도 늘 얘기하지 않는가? 인성 교육하자고. 한 줄 세우기 하지 말고 학생들의 다양한 장점을 찾아달라고... 그렇게 하려면 학종이 일정 수준 유지되어야 한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입시 제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공교육이 정상화되기 힘들다. 입시 제도에 따라 공교육이 춤을 추기 때문이다. 만일 정시만 가지고 학생을 선발하면 수업 시간에 문제 풀이 연습만 시켜야 한다. 어차피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은 그냥 배제시켜야 한다. 선택 과목이 아니라고 하는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이어폰 꽂고 자기 공부해야 한다. 그게 학교인가? 그게 학교가 가야 할 이유가 되는가? 학교는 입시를 위해 존재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모든 학생들에게 의미있는 배움이 행해지는 곳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오지 선다형 문제 풀이 잘 하게 하는 기술 가르치는 교육은 배제되어야 한다.

물론 갑질은 없어져야겠지만 전문가들의 권위마저 갑질로 치부하고 인정하지 않으면 이 사회가 가야 할 길이 없어진다. 교사들 중에 함량 미달인 사람도 있겠지만 - 함량 미달은 어느 직종에나 다 있다. 정치가 집단 중에 가장 많고. 심지어 부모도 함량 미달인 사람이 있는데 교사라고 없겠는가? - 그런 사람들을 기준으로 정책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 대다수의 교사들은 열심히, 잘,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하고, 학교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성장하길 바란다.

학부모들은 학종 확대하면 자신의 자녀들이 대학 가기 더 어려워질 거 같이 생각하지만, 정말 생각해 보시라. 내 아이의 성적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학종이 아이에게 불리한지 유리한지. 모르긴해도 아주 우수한 성적을 가진 학생이 아닌 한 학종으로 가면 수능으로 가는 것보다 대학 선택의 폭이 더 커질 것이다. 특정 지역의 서울대 정시 입학생이 한 명도 없다는 게 무얼 의미하겠는가? 정말 내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학생의 평균 점수와 등수만 확인할 게 아니라 얘가 수업 시간에는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표현력이나 창의력은 있는지, 배려심은 있는지, 열정은 있는지, 책임감은 있는지, 사회성은 있는지, 협동심은 있는지 등을 궁금해 해야 한다. 학교에서 교과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그런 모습들을 관찰하고 평가해 주겠다는데, 그리고 그걸 일정 수준 반영해서 대학에서 선발하겠다는데 그건 절대로 믿을 수 없다면 학교 교육을 시험 준비 시켜 주는 곳 이상의 의미를 두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 없다. 교사를 못 믿겠다고? 그냥 객관식 시험 점수만 믿겠다고? 그 시험 문제도 교사가 내는거다.  학교의 권위가 사라져서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깨우지 못하는 시대이다. 권력은 사라져도 권위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교사의 전문성을 탓해야지, 교사를 믿을 수 없으니 학종은 안 된다는 주장은 우리네 학교 교육을 후퇴시킬 뿐이다. 언제까지 명문대를 위해서 국영수 성적 한 줄 세우기로 평가를 해야 하는가? 정말 우리 학생들을 그렇게 키우고, 그런 학생들이 엘리트가 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아, 재미없다.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