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이 상책
가장 좋은 것은, 대상에게 애정을 가지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주며 원하는 것을 적절히 제공해 주기만 할 뿐, 다가가려고 말고, 잡으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돌봄을 알아달라고 구걸하지 말고, 그냥 적당히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사는거다. 그 대상이 사람이냐고? 말 해 놓고 보니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은데, 길에서 사는 개와 고양이 이야기를 하는거다. 그게 힘들다면, 그냥 무관심하게 투명인간 아니 투명 개 투명 고양이 취급하면 된다. 내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면 모른척 외면하면 된다. 살펴주기는 힘들어도 무관심하기는 쉬운거 아닌가?
개나 고양이 혐오증을 가진 사람이라 무관심하기 힘들다면, 혐오증 가진 사람이 문제인거지, 개나 고양이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때문에 개나 고양이를 제거하거나 격리하는 건 부당하다. 내가 벌에게 혐오증을 가지고 있거나 벌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으면, 자신이 피해야지, 벌이 그런 사람을 알아보고 피할 도리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런 증상이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다. 자신이 그들을 혐오한다고 그들을 사라지게 해 달라는 건 아주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불가능한 요구이다. 어차피 지구에 발 붙이고 사는 한 우리는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많은 종들을 만나며 살 수밖에 없고, 그들을 처치하는 건 우리의 폭력일 뿐, 엄밀히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요즈음 동네 뒷산에서 뉴페이스 백구 한 마리가 보인다. 서너달 쯤 됐는데 자주 보진 못했지만 이 근처에서 왔다갔다 하는 듯 하다. 전망 좋은 곳에 앉아 멀리 내려다보고 있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한 70년은 산 사람같은 표정(?)이다. 그 아래에서 개와 사람이 지나가도 쳐다 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혼자 다니던 얘가 어느 순간 푸들 닮은 유기견과 같이 다닌다. 개도 사회성이 있는 동물이라 떠돌이 애들도 맘에 맞는 친구들을 만나면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다. 사냥도 혼자하는거보다 낫고, 집단 생활에 익숙한 애들이라 덜 외로울거고... 천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에도 혼자보다는 무리가 낫다고 판단했을게다. 어쨌든 산에 오르다가 푸들 유기견을 보고 해리가 짖자, 백구가 - 몇 번 만나는 동안 도망 다니느라 바빴지 한 번도 짖는 걸 본 적이 없는데 - 짖는다. 얘 딴에는 의리인가보다. 너 우리 푸들 보고 짖지 말라고. 나는 대책도 없으면서 우리 집에 같이 가자고 꼬셔 봤지만 당연히 백구는 저 인간 왜 자신에게 말 시키냐며 경계하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들개라며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잡히면 법대로 열흘 안에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살처분 당한다. 얘들을 왜 잡아서 살처분을 해야 하는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수용할 수도 없다. 개체수 늘어나는게 걱정이라면 중성화 수술을 해 주면 되고, 사람에게 해꼬지 하지 않는다면 산에서 살도록 해 주면 되지 않는가? 물론 가장 좋은건 그들을 잡아서 좋은 가정에 입양보내는거지만 그게 힘들다는걸 안다. 그럼 그냥 내 버려두면 된다. 나같은 사람이 있어서 밥과 물은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을거고. 그냥 그렇게 산에서 사는 개로 그렇게 살면 왜 안되는지 난 도통 이해가 안 된다. 민가에 피해라고 해 봐야 놀라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이고, 가끔 차도에 나타나면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건데, 산에서 먹을거 적당히 있고, 사람들이 자신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걸 알면 걔들도 굳이 위험한줄 알면서 내려오지 않는다.
같이 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아니 그게 힘들다면 그냥 차라리 무관심하게 방치했으면 좋겠다. 단언컨대 유기견에 물렸다는 사람보다 이웃이 키우는 반려견에 물렸다는 사람이 훨씬 많고, 유기견에 피해 당했다고 하는 사람보다 이웃이 키우는 반려견때문에 피해 보고 있다는 사람이 훨씬 많다. 주인없는 개라고 함부로 하지 말고 그들에게도 아량을. 아니 그냥 무관심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