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알아서 해결해야지
우리반 학생 갑이 내게 면담을 신청했다. 고3 담임을 하면서 그런 면담은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집단 따돌림인가 가슴이 철렁했다. 그런데 듣고보니 다행스럽게도(?) 그건 아니었다. 갑이 내게 말하길, 자신을 포함하여 4명의 친구들과 함께 다녔는데 그 친구 그룹이 2대 2로 깨졌단다. 두 명의 친구들이 갑과 을에게 너희와 우리는 맞지 않는다며 앞으로는 따로 다니자고 했단다. 그래서 갑이 이유를 물으니 이런 저런 갑과 을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더란다. 그래서 갑은 심리적으로 힘들어졌다며 내게 도움을 청했다. 다시 네 명이 다니게 해 달라고...
당황스러웠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19살이 된 자칭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을 불러 놓고 '앞으로는 사이 좋게 넷이 다니라'고 할 수도 없고, '갑은 아직 너희를 좋아하니 갑의 성격을 그냥 너희들이 다 참아주라'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갑에게 물었다. "그렇게 힘들면 네가 미안하다며 맞춰볼테니 계속 함께 다니자고 말해 보지 그랬어?" "제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 아니라 그렇게까지 하긴 싫어요."
내 진심은 '너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친구해 보니 너랑 안 맞는다는데... 그걸 어떻게 돌리지? 너도 그렇게까지 할 마음은 없으니 사과할 마음이 없는거고... 서로 성격이 안 맞는거 같은데 방법이 없어. 혼자가 된 것도 아니고 너랑 잘 맞는 을이 있잖아. 둘이 또 마음 맞는 다른 친구를 찾아.'
그럼 또 눈물 뚝뚝 흘리며 더 당황스럽게 나를 만들 것 같아 나는 이렇게 말했다."난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 지 잘 모르겠다.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식은 친구의 마음을 돌려달라니...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좋겠니?" 그랬더니 갑이 말한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다시 넷이 다니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요." 그래서 나도 말했다. "나도 방법을 모르겠어. 내가 걔들을 불러놓고 너랑 다시 놀라고 한다고 그렇게 될까? 오히려 너를 더 싫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괜찮겠어?"
학생들이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수준의 문제조차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점점 그런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교무실에 휴지 달라고 오는 아이, 돈 빌려 달라고 오는 아이, 쉬는 시간인데 교실이 시끄럽다고 오는 아이, 아이들이 자신이 싫어하는 가수의 동영상 틀어놓고 본다고 꺼 달라고 하는 아이, 교실에 에어컨을 켜서 춥다고 오는 아이, 히터를 안 꺼서 덥다고 오는 아이, 놀아주는 아이가 없다고 오는 아이, 정말 별별 아이들이 다 있다. 그걸 네가 알아서 해결해라고 했다가는 학생들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하는, 인권 침해를 하는 시대착오적인 교사가 돼서 공분을 사기 십상이다.
교실에서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해결하면 될 일인데 그걸 못한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곧 성인이 될 고등학생들이 이런 사소한 문제조차 스스로 해결못하고 부모나 교사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면 도대체 우리 교육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건지 의심스러워진다. 추우면 '얘들아 나 너무 추워서 그런데 에어컨 좀 껐다 틀어도 돼?' ,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휴지가 없으면 "야 혹시 휴지 있는 사람 나 좀 주라" 그러면 되는데 그걸 못하고 선생님을 부른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걸까? 아이들은 놀면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데, 제대로 놀면서 성장하지 못한 부작용인가? 그저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된다면서 모든 문제는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고 가르친 부모의 교육 탓인가? 지나친 경쟁때문에 나만 알고 타인들과는 관계 자체를 형성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형성된 건가? 원인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정상적인 성장 수준도 아니고, 이런 상태로 어른이 되어서는 제대로 성인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하긴 오늘 인터넷 기사를 보니 게임 학원도 성업중이란다. 예전에 줄넘기도 학원에서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땅히 줄넘기든 뭐든 놀이를 할 곳이 없어서 학원에 보낸다는 학부모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놀이조차도 성과를 내야 하는 목표 지향적인 일이 돼 버린 셈이다. 이제 친구 사귀는 기술도 학원에서 배워야 할 기술이 될 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의대 교수를 하는 친구가 요즘 애들 걱정된다며 의사 고시도 과외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저렇게 의존적으로 공부해서 나중에 진료는 어떻게 볼 지 걱정된다고 했다. 환자 보다가 집이나 과외 선생에게 전화해서 '엄마 환자가 왔는데 이 환자를 어떻게 봐야 할 지 모르겠어. 난 배운 적이 없는 이상한 증상을 가지고 있어. 좋은 과외 선생님 좀 소개해 줘.' 이럴거 같다는거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은행 다니는 친구가 말했다. '야, 말도 마라, 명문대에 스펙 화려하면 뭐 하냐, 너무 훈훈한 스펙의 신입 사원에게 이거 복사 좀 해 오라고 시켰더니 복사기 어딨는지 모른대더라. 그래서 복사기 위치 알려줬더니 복사기 사용법을 모른대. 정말 머리통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그 정도 문제는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거 아니냐?'
아, 진짜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키워내고 있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