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왜 같이 살면 안 되지?

사회선생 2018. 5. 16. 21:33

백구가 나타났다. 1년 전 산에서 우연히 몇 번 만났던, 지금은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그 백구는 아니다. 새로운 녀석이다. 길에서 혼자 돌아다니는걸 봤는데, 겁이 많고 경계심이 심했다. 해리가 갑자기 짖길레 봤더니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는 모습을 봤고, 길냥이 밥장소에서 지나가는 모습을 봤다. 길냥이가 사라진 후 얼마 동안 밥이 그대로 있다가 최근들어 밤새 없어지더니 백구가 먹었나보다.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굶주림에서 조금은 벗어났을 생각을 하니...

문득 대만, 인도네시아에서 보았던 개들이 생각났다. 유기견들이 길에서 자유롭게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있었다. 유기견의 자유가 부러운게 아니라 - 개는 사람의 돌봄이 필요한 종이다 - 그렇게 큰 개들이 돌아다녀도 어느 누구도 그 개들을 보면서 공포스러워하지도 않았다는 점이 부러웠다. 많은 대형 유기견들을 봤지만 그 옆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도망가지도 않았고 그냥 투명개 취급하며 자기 갈 길 가고, 자기 할 일 하고 그랬다. 개도 그랬다. 출근 시간에 붐비는 지하철 역에서도 사람 다리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왔다 갔다 하는 개를 봤다. 그 이채로움이란.

왜 우리는 그렇게 관대하지 못할까. 왜 개를 혐오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유기견인지, 유기견이 낳은 새끼인지 모르지만 - 그들은 들개라고 부르는 - 그 개들이 먼저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은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일 확률보다 낮다. 대로변에서 다니는 경우도 없다. 떼지어 다니는 개들도 사람을 보면 도망가지 갑자기 사람에게 대드는 경우는 없다. 대부분은 그 개를 보고 놀라서 소리를 지르거나 냅다 뛰거나 할 때에 개들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줄 알고 공격한다. 

내가 사는 동네는 야산이 있다. 멧돼지도 가끔 나타나고, 유기견들도 종종 보인다. 길냥이는 말할 것도 없다. 바라건데 유기견과 길냥이를 포획해서 중성화 수술을 해 주고 방사한 후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으면 좋겠다. 입양이 되면 고맙지만, 도시에서 대형견이 입양될 확률은 매우 낮다. 우리나라의 보호소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살처분한다. 사설 보호소는 열악하기가 뒷산만 못하다. 차라리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그렇게 살게 해 주면 좋겠다. 먹이도 적절히 제공해주면서...  

자연의 섭리 혹은 적자생존을 들먹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개는 인간에 의해 인간에 의지하도록 품종이 끊임없이 개량되며 만들어졌기 때문에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 그런 자연도 없어진지 오래지만 - 자기 힘만으로 사는게 고양이보다 힘들다. 사람의 도움이 없이 살기 힘들다. 내가 거두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동네에서 위협받지 않고 그냥 살게 해 주는 아량을 베푼다고 그렇게 큰 일이 날 것 같지도 않은데... 왜 이리 개만 보면 혐오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혐오감을 갖는 사람이 문제인가, 개의 존재가 문제인가. 개는 그냥 동네에서 그렇게 살면 안 되는가? 걔 잘못도 아닌데...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적당히 숨어서 살겠다는데... 그 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안타깝다. 얘를 잡아서 보호소에라도 보내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걱정이다. 잡아도 걱정, 잡지 못해도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