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테르의 말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 전에 본 '선택'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는 하루이다. 대략 내용이 이렇다. 6.25 때 포로로 잡힌 북한 군인은 남한의 포로 수용소에서 지내며 북송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전쟁이 끝난 후 남한 정부는 그를 전향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가 자신의 신념 - 공산주의가 옳다는 - 을 버리지 않자 수용소에서 교도소로 이감시켜, 사상이 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그 곳에서 보내게 한다. 20대 청년은 온갖 회유와 압박 등에도 굻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다가 70대 노인이 되어 석방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6.15 남북 정상 회담으로 포로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북송된다.
민주주의 국가라면 사상의 자유가 인정되어야 하고, 그가 무정부주의자든 공산주의자이든 왕정주의자이든 범법 행위를 하지 않는 한 감옥에 가둘 수는 없다는 매우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영화였다. 생각은 자유다. 행위를 단죄할 수는 있어도 생각을 단죄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영화를 보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어느 사이 국가의 부당한 탄압에 저항감을 갖게 되고, 그의 편에 서서 석방과 북송을 바라게 된다. 그리고 그 영화의 말미였나... 볼테르의 말이 화면을 가득채웠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사상 때문에 탄압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이다.'
오늘 학교에서 누군가 학운위 교사 위원 결정 방식을 민주적으로 해 달라고 요구하였는데, 발언권조차 갖지 못한채 제재당했다. 그가 발언하는 내용을 지지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의 발언 내용에 불편함을 갖는 사람들 다수도 학교측의 물리적 대응 방식을 보면서 마음을 돌려버렸다. 교사들은 '왜 학운위 교사 위원을 민주적으로 결정하지 않는가?'보다 '왜 학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교사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가?' 에 더 분기탱천해 있다. 오늘의 해프닝을 보면서 우리 학교가 왜 부장을 많이 둬야 하는지 다시 한번 알게 됐다. 민주적이지 않은데, 민주주의의 형식을 갖추려면 세 명의 부장 가지고는 힘들었을테니...
다시 영화 '선택'으로 돌아가서! 만일 그 북한군 포로를 남한에서 일찌감치 석방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맛을 보게 했으면 어쩌면 그는 스스로 전향했을지도 모른다. 가둬놓고 폭력적이고 비열한 방법으로 전향하라고 하는 것에 더 강한 반발심으로 '나는 죽어도 공산주의가 좋아요'라고 했을지 알게 뭔가? 남한에서 자유롭게 살 기회를 주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를 평생의 꿈으로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 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