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미투 운동을 보면서

사회선생 2018. 2. 20. 16:51

미투(me too) 운동으로 사회에서 불거져 나오는 성추행과 성폭행의 사례들을 보면 도대체 정상적인 남성이 존재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윤택이나 고은은 유명세때문에 드러났을 뿐, 드러나지 않은 무명씨의 사건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피해 여성들의 용기있는 고백에도 많은 남성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뭐 그 정도를 가지고 추행이래?' '왜 옛날에는 가만히 있다가 지금 난리야?' '저항을 안 했으니까 성폭행이 지속된거지. 그게 정말 성폭행이었을까?' 여성과 남성의 반응의 간극이 매우 크다.

다수가 그런 의식을 가지고 있는 남성 중심 사회이기때문에 정작 가해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짓이 추행도 폭행도 아니라고 굳세게 믿고 있으며, 다수의 사람들도 대부분은 반신반의한다. 포커스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맞춰지는 아주 교묘한 범죄이다보니 여성들은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하고도 지금까지 쉬쉬하며 혼자서만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을거다. 개인이 한 사회의 문화를 거스르며 살아가기는 힘들다. 문화적으로 왕따가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내 밥줄까지 쥐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여성들 중에는 남성 중심의 문화에 편승하여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동료나 후배들을 보면, '네가 처신을...' 어쩌구하며 말도 되지 않는 훈계를 하며 덮으라고 종용한다. 우리나라 최고의 권력형 엘리트 집단인 검사 조직에서도 그랬다는데 다른 집단에서는 오죽할까? 또 밥줄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요즈음같은 때에는 내가 남학교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성추행과 성폭행의 가해자는 주로 남성이고, 따라서 그 주요 교육 대상 역시 남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춘기 시절의 성교육, 양성평등교육은 매우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남학생들의 인권감수성이 이전과 비교하면 분명히 커졌으리라. 그에 비례하여 양성평등의식도 같이 커졌는지 매우 궁금하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20여년 전, 내가 교직 생활 시작할 때 즈음에는 남학교의 문화가 군대문화와 유사했다. 일단 모든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놓고 보는 것이나, 여성을 폄하하고 왜곡하고 희화화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예를 들어 수학여행이라도 가면 소위 장기자랑이라는 시간에 가슴에 풍선을 넣고 여성의 신체를 희화화하며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든지, 그런 여장한 신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지며 춤을 추는 퍼포먼스 등이 흔한 일이었다. 여성의 거절은 긍정의 의미이다, 돈만 많으면 여성은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성공하면 여성은 다 따르게 마련이다, 남성은 도둑질 빼고는 다 해 봐야 한다는 등의 사회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렇게 성장한,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들은 자신의 추행이나 폭행을 '성은'을 내리는 일 쯤으로 여기지는 않았을까? 크든 작든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남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 추악한 손을 뻗치며 '내가 너 이번 연극에서 비중 늘려줬잖아.' '내가 문단에 한 마디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내가 너 특별히 생각해줄게.' 이러면서... 아, 역겨워 미치겠다.   

당시에 몇몇 여교사가 문제 의식을 가지고, 여성의 신체를 희화화하는 춤이나 행동은 못 추게 해야 한다고 말하면 그냥 웃자고 한 짓인데 뭐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며 말한 사람을 비정상인, 까칠한 여교사로 낙인 찍었다. 교실에서 학생들에게 아무리 잘못된 행동이라고 역설해 봤자, 남성 중심 문화로, 저질 야동으로 성교육을 받은 다수의 학생들에게는 여교사의 과민반응 쯤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생각이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학생들이 있었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교감을 하기 때문에 촉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요즈음의 남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반응이 여학생들의 반응과 다르지 않기를 기대한다. '저런 인간과 같은 남성이라는게 챙피해요.' '어떻게 저런 짓을 할 수 있지?' '저렇게 더럽고 치사한 인간들은 엄중 처벌해야 돼요.' 돌아가는 판을 보니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좋아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남성들도 그런 남성들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