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계를 정리하며
학년말 학급 결석계를 정리하는데 정말 책 한권이다. 내 책상에 있는 책 중 헌법학 이론서가 가장 두꺼운데, 거의 그 두께에 버금간다. 게다가 이 서류들이 나이스와 출석부랑 맞는지, 누락된 건 없는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 한 번 훑어보려고 결석계철을 들었다가 포기했다. 그 방대한 양에 질려 버렸다. 오전에 출석부 통계표 정리하는 데에만 반나절이 걸려 녹초가 돼 버려서 도저히 더 이상 보고 싶지가 않았다. 2학기부터는 지각, 결석, 조퇴가 그 사유도 다채롭게 한 두 건이 아니다. 하루는 무단 결석, 하루는 무단 지각, 그리고 하루는 학교에 잠깐 출석했다가 다음 날은 병결. 여러 명이 돌아가며 퐁당퐁당 담임에게 돌을 던진다.
이 일을 하다가 문득 왜 우리 교사들은 이런 일을 당연하게 여기고 해야 할까 의문이 들었다. IT 강국인 한국에서 일일이 수기로 담임이 출석부 정리를 하고 통계를 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우리네 출근부의 지문 인식처럼 학생들이 카드로 등교 시간 인식하게 하고, 그걸 컴퓨터가 통계내 주고, 교사들은 수업에만 집중하게 해 주면 안 될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닌 데다가, 우리보다 IT 후진국인 나라들도 지각,조퇴,결석은 행정실에서 처리하거나 상담 교사의 일이지, 교사들의 일이 아니라는데... 왜 우리만 유독 담임 교사의 일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관리자들의 무관심? 혹은 개근하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의식때문? 하긴 나만 해도 얼마 전까지는 개근과 출석을 강조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 출석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만큼 자유로워졌다. 아프면 안 오고, 늦잠 자도 안 오고, 가족 여행 간다고 안 보내고, 학원 간다고 안 오고, 입시 준비로 컨디션 조절해야 한다고 안 온다. 그들에게 '성실하게 학교 생활해야 한다'는 말은 먹히지도 않는다. 공연히 출석 강조했다가는 꼰대되기 십상이다. 학부모들조차도 동의하지 않는데 어떻게 교육이 된단 말인가?
아침마다 늦게 오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전화하고, 결석하는 학생에게 처방전을 구걸(?)하고, 학교 안 보내겠다는 학부모에게 제발 학교는 보내라고 사정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이럴 때에야말로 원칙대로 처리하는게 정석 아닌가? IT 강국의 능력을 제발 학교의 출결 처리에서 보여주길. 그래서 교사들이 출석부 숫자 쓰고 점 찍으며 자괴감을 느끼게 해 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P.S. 이런 일을 하며 기운 빼고 있는데 호주로 이민 간 어느 교사가 호주 학교의 출결에 관한 글을 올린 걸 봤다. 담임 전화번호는 '안물안궁'이고, 지각이나 결석같은 건 행정실에서 처리하며 교사는 교재 연구와 수업만 한다는... https://brunch.co.kr/@hyejunglee9jvo/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