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우리는 질문만 하다가 사라진다

사회선생 2018. 1. 22. 17:00

우리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질문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질문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꺠달음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깨달음은 무지함을 뛰어 넘는 사고를 필요로 한다. 무지함을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매우 적극적 과정이다. 내적 사고가 외적 행위로 연결되는... 

그리고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질문은 그 자체로서 다양한 생각의 포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특히 어느 누구도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질문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뉴튼의 '왜 사과가 떨어질까?' 이런 질문을 생각해보라! 뉴튼의 물리학 법칙은 세상을 바꾸어 놓지 않았는가?

그런데 우리네 삶에서는 답을 하기 힘든 질문들이 참 많다. 그래서 어떤 이는 사주역학으로 풀어 내며 위안을 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윤회론으로 논리를 맞춰보려고 노력한다. 또 절대적인 신의 존재에 맡겨버리고 그 뜻이라고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답을 찾아야 마음의 공허함과 답답함과 억울함(?)이 일정 부분 해소되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왜?' 를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면 결국 형이상학적 질문만 남고, 존재론, 우주론, 신학을 바탕으로 한 관념적 믿음이 돼 버린다. 실증적 지식이 아닌 관념적 믿음이기 때문에 인간은 100% 설득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증적 지식이라는 것도 편협하긴 마찬가지이다. 과학이라는 신념이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켜놓았을 뿐. 입증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어떻게 이리 저리 끼워맞춰도 인간은 계속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다. 마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재판을 끝내고 나올 때처럼... '분명 이게 다가 아니야, 뭔가 분명히 있을 거 같은데...그건 뭘까?' 

네루다의 싯구절이 떠오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 먼지만도 못하고, 짐작하는 것만이 산더미같다. 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 우리는 질문만 하다 사라질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