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오래 전 대학 시절 봤던 '피고인'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그 영화를 보면서 성폭행을 보는 시선이 얼마나 남성 중심적아었는지 깨달았던 기억이 있다. 술집에서 일하는 여성이라고 해도, 먼저 여성이 남성에게 술 한 잔 하자고 했다고 해도, 야하게 옷을 입은 여성이라고 해도 성폭행은 폭행이다. 어떤 사람이 돈을 과시했다고 해도, 좋은 옷을 입고 다녔다고 해도, 비싼 장신구를 하고 다녔다고 해도 강도에게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20년 전의 그 행태는 지금도 변한게 없는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성폭행'이라고 규정짓기 위해서 여성의 '강한 저항'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성폭행이었는가 아닌가 여부가 '합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한 저항'이 있었느냐에 있다는 것이다. 은장도라고 갖고 다니며 자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나는 강도냐 아니냐의 여부가 피해자의 강한 저항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직장 상사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강하게 저항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먼저 유혹했다는 오명을 받고, 나중에라도 너무 억울해서 고소하면 꽃뱀이라는 낙인까지 찍힌다. 최근 한샘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서 어떻게 20년 전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지 섬칫했다. 여전히 너무나 남성중심적인 사회이다. 우리네 학생들은 그런 험한 꼴 안 당하고 살아야 할텐데... 2017년에도 똑같은 걱정을 하면서 여학생들에게 말하고 있다. 취하도록 술 마시지 말라, 옷 야하게 입지 말라, 늦은 시간에 다니지 말라고... 그냥 남학생들에게 가르치면 된다. 여성이 예스라고 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관계는 범죄라고. 그런데 여전히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남성 뿐 아니라 여성조차도... 성폭행에 관한 생각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아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