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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이든 재개발이든

사회선생 2017. 12. 22. 21:26

어릴 때에는 자주 봤던 것들을 지금은 보지 못한다. 낮게 날던 제비를 이제는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말똥구리나 메뚜기 같은 곤충도 이제는 볼 수 없다. 마당 벚나무에 드글드글했던 송충이도 이제는 구경하기 힘들다. 내가 아는게 별로 없어서 사라진 것을 모를 뿐, 어디 없어진 곤충이나 새와 같은 동물이 하나 둘이겠는가? 식물은 또 어떤가?

재건축되는 아파트 단지들은 대부분 저층 건물에 주변 녹지가 풍부하고 오래된 아파트이다. 그렇다보니 그곳에 터를 잡고 사는 동식물들도 많다. 오래된 나무와 이름 모를 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새와 다람쥐, 고양이 등 나름대로 거기에서 익숙하게 살아왔던 동물들이 있다. 그런데 재건축을 할 때 어느 누구도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주지 않는다. 그냥 무자비하게 부숴 버리고, 밀어버린다. 늘 거기에서 먹고 자고 놀았던 길고양이들은 갑자기 터전이 사라졌는데 갈 곳이 없다. 새들도 다람쥐들도 청설모도 갑자기 갈 곳이 없어져 당황하다가 사라진다. 아니 죽는다. 터를 잃은 사람은 자유롭게 이동이라도 하지만 터를 잃은 식물이나 동물은 사실 다른 곳에서 다시 터를 잡고 살기가 사람보다 훨씬 어렵다.  

아파트가 오래 되어 살기 불편해지면 약간의 비용을 들여 외관과 내관을 적당히 수리하면 될 것을 우리나라에서는 모조리 왕창 때려 부수고 거기에 숨막히는 고층 아파트들을 세운다. 그래야 건설사도 소유주도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고 우리나라의 GDP는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사라지는, 잃는 것들의 비용은 산정되지 않는다. 재건축을 할 때 사람들은 경제적 이익은 매우 세세하게 따지지만 그 곳에서 터를 잡고 살았던 동식물에 대해서는 무심하다. 천연기념물이나 역사적 유적지라도 가운데에 버텨주지 않으면 재건축을 할 때 애시당초 고려의 대상이 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최대 규모라는 둔촌주공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건물이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그 동네에 살던 길고양이들이 당황하고 있다. 그러자 몇몇 뜻있는 사람들이 스토리 펀딩으로 기금을 모아 길고양이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고양이들도 이사를 가야 한다. 사람의 도움으로, 그리고 그들에게도 비용이 필요하다. 그 비용을 개발이익에서 충당하는 것이 옳건만 - 이익을 본 사람이 손해를 본 존재에게 지불하는 것이 정의로운 거 아닌가? - 온전히 뜻있는 사람들 몇몇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고양이들이라도 살려보겠다는 노력이다. 비단 고양이에게만 도움이 필요하겠는가?

우리의 재건축 문화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 개발 이익에서 생태계 복원 및 동식물 이주 비용까지 모두 산정해 지불하도록. 그리고 더 나아가 몽땅 부수고 다시 짓는 재건축보다는 비용을 조금 부담하더라도 기존 자연환경과 건물의 골조를 웬만하면 살려두고 리모델링을 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GDP 조금 덜 올리면 어떤가? 그보다 소중한 것들을 우리가 잃고 있는지도 모르는데...